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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를 읽는 길 위에서(기록과 침묵, 고분군, 유적)

by see-sky 2025. 3. 28.

가야의 김수로 왕 왕릉
가양의 왕릉

수백 년간 삼국시대의 변방으로만 취급되던 ‘가야’는 과연 어떤 나라였을까? 『삼국사기』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고, 교과서 속 단 몇 줄로 기억되는 가야. 그러나 우리는 흙 속 유적과 고분군, 그리고 철의 흔적을 통해 가야를 읽을 수 있다. 이 글은 신화와 고고학 사이, 그 중간 어딘가에서 가야를 사유하며 걸었던 발자취의 기록이다.

가야는 실존했는가 – 기록과 침묵 사이의 왕국

‘가야’라는 국명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역사책에서는 분명 삼국시대의 이웃으로 존재했지만, 정작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신라나 백제, 고구려에 비해 너무나도 빈약하게 등장한다. 그 이유는 단순히 기록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야는 오랫동안 ‘신라의 적국’이자, ‘정복된 땅’이었기에 기록에서 지워진 존재였다. 특히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는 철저하게 신라 중심의 역사서로, 가야의 존재를 의도적으로 최소화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흙은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문헌에서 사라진 왕국은 고고학 속에서 자신을 되살리고 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등 유네스코에 등재된 ‘가야 고분군’은 가야가 실재했던 ‘고고학적 왕국’ 임을 강력하게 증명한다. 고분에서 출토된 ‘금관’, ‘철기’, ‘유리구슬’, ‘말 갑옷’ 등은 단순한 장례용품이 아니라, 당시 가야가 얼마나 정교한 철기문화를 기반으로 한 해상 네트워크의 중심이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최근에는 일본 규슈 지역에서 가야 유물과 유사한 유적이 다수 발견되며, 가야가 단순한 지역정권이 아니라 동아시아 해양문화권의 일원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즉, 가야는 단지 ‘지방 소국’이 아니라 국제 교류의 허브였던 셈이다. 이제 가야는 더 이상 침묵의 왕국이 아니다. 기록은 없지만, 유물은 말하고 있고, 고분은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무덤은 말이 없지만, 고분군은 모든 걸 알고 있다

가야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가장 생생한 장소는 ‘고분군’이다. 그중에서도 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그 압도적인 스케일과 배치에서 가야의 정치 구조를 짐작하게 만든다. 지산동 능선을 따라 계단식으로 펼쳐진 수백 기의 봉분은 마치 왕과 귀족, 장수들이 줄지어 하늘을 바라보는 형국이다. 특별한 안내문 없이 그저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왕국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계층화된 사회였는지를 느낄 수 있다.

고분은 침묵하는 장소지만, 동시에 가장 솔직한 장소다. 신라처럼 기록으로 포장하지 않았기에, 가야는 고분 속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출토된 유물의 배치, 부장품의 종류, 심지어 흙의 층위와 방향성까지도 가야인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말해준다. 가야의 무덤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의례의 기록이다.

예를 들어 함안 말이산 고분군에서는 ‘순장’의 흔적이 발견됐다. 즉, 왕이나 귀족이 사망했을 때 그들과 함께 살아 있는 사람들이 순장당했던 것이다. 이는 ‘왕권 강화’와 ‘초월적 신성성’이 강조되던 시기였음을 시사하며, 단순한 농경 사회가 아닌 강력한 지배 구조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는 유리로 만든 장신구와 페르시아산 비드(bead)가 발견돼, 가야가 실크로드 동쪽 끝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고분군은 말이 없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곳은 가장 진실한 언어로 가야를 말하고 있다. 무너진 흙더미 속에서 금관이 나오고, 철기 파편 하나로 수출입 경로가 드러나는 그 장면은 역사책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생생함이다.

가야를 걷는다는 것 – 유적, 풍경, 그리고 여백의 의미

가야 유적지에는 다른 고대 국가와는 다른 ‘특유의 정적’이 흐른다. 경주처럼 웅장한 전각이나 복원된 사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백제 유적처럼 화려한 미술품이 즐비하지도 않다. 가야를 걷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비어 있는 역사’를 채워나가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합천의 옥전 고분군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소박함 속에서 깊은 울림이 있다. 안내판은 간결하고, 출토 유물은 근처 작은 전시관에 조용히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옥전의 언덕을 걷다 보면 보이는 것은, 돌 하나하나를 정성스럽게 쌓은 손길, 벌겋게 드러난 토양 위에 누워 있던 사람들의 무게감이다. 가야의 유적은 화려하지 않지만, 인간의 온기를 담고 있다.

또한 가야는 ‘사라진 나라’이자 ‘복원 중인 기억’이다. 가야는 2020년대 들어서야 국가 차원의 역사 복원이 본격화되었으며, 대부분의 유적지는 아직도 발굴 중이거나 학계 내에서도 해석이 엇갈린다. 이 불완전함이 오히려 여행자에게 더 큰 상상력의 여지를 남긴다. 단순히 역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상상하고, 재구성하며, 나만의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백’을 제공한다.

가야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유적지 답사가 아니다. 그것은 잊힌 역사와 재회하는 일이고, ‘없던 것’을 ‘있다고 믿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일이다. 가야의 땅을 밟는 순간, 우리는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역사 복원에 참여하는 독자가 된다.

흙 속에 묻혔던 가야는 이제 조금씩, 자신을 말하기 시작했다. 비록 기록은 짧고, 신화는 희미하며, 기념비도 없지만 고분군은 침묵 속에서 오래된 문장을 쓰고 있다. 신화와 고고학 사이, 그 애매한 틈에서 가야를 읽는다는 것은 지워진 세계를 다시 불러오는 작업이다.

당신이 걷는 그 길 위, 무덤 아래, 작은 유물 속에는 한 왕국의 존재 증명이 살아 숨 쉰다. 다음 여행에서는, 흙먼지 가득한 고분군 한가운데서 가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말 없는 나라, 그러나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나라. 그것이 바로 가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