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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삼국유사의 고장 , 절과 고택 사이에서 마음을 물들이다

by see-sky 2025. 3. 29.

군위의 겨울풍경 사진
군위의 겨울 풍경

경북 군위는 여유롭고 따뜻한 고장입니다. 하지만 그 조용함 안에는 천 년의 이야기가 흐르고, 고요한 절과 오래된 고택에서는 잊고 있던 마음이 되살아납니다. 이 글은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를 따라 걷고, 절과 마을 사이에서 감정의 결을 만져보았던 여정을 담은 기록입니다. 관광보다는 느림을, 인증샷보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은 분께 추천드립니다.

이야기가 남은 땅, 군위에서 만나는 삼국유사의 시간

경북 군위는 한국 고대 문학과 불교문화의 근간을 이룬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군위에는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 스님께서 말년을 보낸 인각사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 절은  관광지가 아닌, ‘이야기를 낳는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삼국유사라는 책이 단지 옛이야기 모음 정도로 기억하시지만, 사실 삼국유사는 신화와 역사, 불교와 민속이 공존하는 다층적인 서사 구조를 지닌 문헌입니다.

인각사를 방문하면, 경내 한가운데 놓인 ‘일연대’에서 발걸음이 멈추게 됩니다. 이곳은 일연 스님께서 삼국유사를 집필하신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작은 대좌 앞에 앉아 있으면 문득 당시의 시간이 겹쳐지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주변 풍경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 단조로움 속에서 문장 하나하나를 생각하며 책을 써 내려갔을 스님의 마음이 그려집니다. 이러한 감정은 단체 관광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사색의 선물입니다.

군위에는 ‘삼국유사 테마파크’라는 장소도 있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상업적 관광지처럼 느껴지지만, 이곳은 의외로 잘 구성된 복합 문화 공간입니다. 신화를 시각화한 전시관부터 고대 서사 구조를 체험할 수 있는 VR 콘텐츠까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아이를 동반한 가족에게는 역사교육과 감성여행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하지만 군위에서 진정한 삼국유사의 감성을 느끼고자 하신다면, 길을 따라 천천히 걷는 여정을 추천드립니다. 아무도 없는 인각사 뒤편 숲길, 고요히 흐르는 위천 강변, 그리고 어르신들이 정자에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읍내 풍경. 이 모든 것이 바로, 삼국유사라는 텍스트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입니다.

절집에 머문 고요함, 사라졌던 나를 되찾는 산사의 하루

군위는 오래된 절이 많은 고장이기도 합니다. 가장 유명한 인각사 외에도, 화산사, 법주사 군위분원, 제2의 인각사라 불리는 원효사 등이 있습니다. 이들 사찰은 규모는 작지만, 대신 깊은 고요함을 간직하고 있어 조용한 치유를 원하는 분들께는 더할 나위 없는 여행지가 됩니다.

화산사는 군위군 부계면의 산중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방문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절의 공간을 온전히 혼자만의 것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 법당 안의 은은한 향내, 그리고 산사의 벽에 드리운 빛 그림자는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정서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바쁜 도시에서 잊고 지낸 감정들이 천천히 되살아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산사를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절을 본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마음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어떤 여행지에서는 많은 것을 보고, 찍고, 남기지만, 산사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허용됩니다. 군위의 산사들은 그런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얼마나 풍요로운 감정인지 깨닫게 해 줍니다.

또한 계절마다 변하는 산사의 풍경은 각기 다른 위로를 줍니다. 봄에는 새순이 마음을 밝히고, 여름엔 짙은 녹음이 머릿속을 비워주며, 가을엔 낙엽이 겹겹이 감정을 쌓아주고, 겨울엔 흰 눈이 모든 상처를 덮어줍니다. 군위의 절집은 그렇게 사계절 내내, 한 사람의 마음과 호흡하는 공간으로 존재합니다.

담장 너머 오래된 숨결, 고택과 마을에서 만난 감정들

군위는 고택과 옛 마을이 곳곳에 숨겨져 있는 고장이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화본마을과 산성마을, 그리고 군위읍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읍지 일대는 특히 조용한 감성 여행을 즐기기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이곳들은 아직 상업화되지 않아, 오래된 삶의 온도가 그대로 유지되어 있습니다.

화본마을에는 실제로 100년이 넘은 기와집이 보존되어 있으며, 일부는 문화재로 등록되어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있습니다. 고택에 들어서면 방마다 오래된 나무 냄새가 스며 있고,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살은 현대 건물에서 느낄 수 없는 온기를 전합니다. 마당의 감나무 아래 놓인 평상에 앉아 있으면, 마치 조부모님 댁에 온 듯한 친근함이 밀려옵니다. 그곳은 사진보다 감정이 먼저 찍히는 공간입니다.

산성마을은 돌담이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담장 사이를 걷다 보면 어릴 적 시골길에서 느꼈던 ‘그리움의 결’이 발끝을 따라 올라옵니다. 바람이 불면 담쟁이 잎이 흔들리고, 옆집 어르신이 건넨 말 한마디에 마음이 놓입니다. 군위의 마을은, 사람이 살아온 결이 공간에 남아 있는 진짜 ‘살아 있는 유산’입니다.

또한 군위는 군위역 폐경지, 화본역 철도 문화관, 폐교를 개조한 문화예술 공간 등 흔하지 않은 장소들이 많아, 기억의 층을 자극하는 감성 여행이 가능합니다. 군위는 어떤 거대한 랜드마크보다는, 이렇게 작고 조용한 공간들이 모여, 삶과 역사를 조용히 전해주는 고장입니다.

고택과 오래된 마을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과거 체험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 마음과 연결된 감정들을 발견하는 시간입니다. 어쩌면 군위는 그저 고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놓쳤던 소중한 감정들을 일깨워주기에 더 특별한 곳인지도 모릅니다.

경북 군위는 말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 감정, 그리고 오래된 숨결이 살아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문장을 따라 인각사를 걷고, 산사의 고요함에 마음을 내려놓고, 고택과 마을을 따라 잊고 있던 감정을 되찾는 시간. 그것이 바로 군위 여행의 진짜 가치입니다.

관광지가 아닌, '느끼는 장소'를 찾고 계신가요? 그러시다면 이번 여행은 군위로 떠나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곳에는 오래된 책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