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계, 물시계, 별자리판...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 발명가인 장영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이 글은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떠난 장영실 역사+과학 체험 여행기입니다. 그저 유물만 보는 답사에서 벗어나, 아이 스스로 ‘과학자처럼 관찰하고 기록한 하루’를 담았습니다. 호기심에서 출발해 질문으로 확장되고, 감동으로 마무리된 여정. 그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장영실이 누구예요? – 궁금증에서 시작된 시간 여행
장영실을 처음 들은 것은 아이가 학교에서 ‘우리나라 과학자’를 배우던 3학년 때였습니다. 책에서는 간단하게 "장영실은 조선시대에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든 과학자입니다"라고 소개되어 있었지요. 그 이야기를 듣던 아이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시계를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궁금해요. 옛날엔 어떻게 시간을 알았어요?" 그 한마디에서 우리의 장영실 역사 여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장영실은 조선 세종 시대의 과학자입니다. 놀라운 점은 그가 천민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조선 최고의 과학자로 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원래는 관노였고, 천문기기 수리 기술로 세종의 눈에 들어 궁중 과학자로 발탁되었습니다. 왕은 그에게 차별을 두지 않고 실력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는 그 기대에 부응하듯 앙부일구(해시계), 자격루(물시계), 혼천의(별자리 측정기) 등을 발명하게 됩니다.
아이에게 이 내용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놀라워하면서 묻습니다. “그럼 장영실은 시계도 만들고 별도 보고, 발명도 다 했어요? 완전 과학자네!” 그래서 말했습니다. “그렇지, 장영실은 조선시대에 ‘시간을 만든 사람’이었단다.”
이 한 문장이 아이의 마음에 불을 붙였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장영실이 만든 기계들을 함께 찾아보았고, 서울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 그리고 국립과천과학관의 특별 전시 정보를 찾았습니다. "우리, 장영실이 만든 시계 보러 갈래?" 그렇게 장영실의 발명노트를 따라가는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장영실 발명노트를 찾아서 – 직접 체험하는 조선 과학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세종대왕기념관(서울 동대문구 회기로)이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의 눈이 커졌습니다.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앙부일구, 바로 해시계입니다. 지금의 시계처럼 초침이 도는 것도 아니고, 디지털 숫자가 뜨는 것도 아니지만, 돌로 만든 이 장치는 해의 그림자만으로 ‘몇 시인지’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그림자를 보며 시간을 맞춰보았습니다. 아이의 눈은 빛났습니다. “엄마! 이건 그냥 돌이 아니라, 시간이 들어 있는 돌이야!” 기념관에는 앙부일구 외에도 자격루, 혼천의, 측우기 등의 모형과 설명이 잘 정리되어 있어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장소는 국립과천과학관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직접 조선시대 과학 기구를 조립해 보는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미니 해시계 만들기’ 체험에 참여했습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바늘 그림자가 움직이고, 시간을 맞추는 과정을 스스로 해보면서 아이는 “장영실은 계산을 정말 많이 했을 것 같아. 이런 건 쉽게 안 만들어질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에 제가 덧붙였습니다. “맞아. 그래서 발명은 머리도 써야 하지만, 끈기도 필요하단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자격루 앞에서 한참 동안 물이 떨어지는 모형을 바라보더니, “장영실은 물이 흐르는 속도까지 연구했을까?”라고 말했습니다. 질문이 질문을 낳는 순간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든 ‘작은 장영실 발명노트’에는 그림과 설명이 가득했습니다. “해시계는 그림자가 지는 걸 이용해요. 너무 똑똑해요.” “물시계는 물이 똑같이 떨어져야 돼요. 똑같다는 게 중요해요.” 그 노트를 보며 저는 느꼈습니다. 이 여행은 단지 유물을 보는 게 아니라, 아이가 과학자처럼 생각하는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과학자가 된 아이 – 질문하고 느끼고 기록하는 하루
아이의 장영실 여행은 일반적인 역사 공부나 체험학습을 넘어서, 스스로 관찰하고, 질문하고, 기록하는 '과학자의 사고방식'을 따라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기념관과 과학관에서 돌아온 후에도 아이는 집에 돌아와 질문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장영실은 밤하늘을 보면서 별을 어떻게 계산했을까?” “물은 늘 똑같이 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걸 어떻게 맞췄을까?” 이런 질문들 앞에서 저는 답을 주기보단, 함께 찾아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는 장영실 관련 기록, KBS 다큐멘터리, 그리고 어린이용 위인전을 함께 읽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만의 “장영실 탐구일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나는 오늘 장영실처럼 시간을 만들진 못했지만, 시간을 더 잘 알게 됐어요.” “시계를 보면서도 해가 뜨고 지는 걸 더 잘 보게 됐어요.”
이 말에 저는 울컥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장영실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장영실처럼 생각하고, 장영실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아이는 과학과 역사, 그리고 사람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얻었습니다. 발명은 물건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배웠습니다.
결국, 장영실을 따라간 하루는 아이에게는 하나의 수업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탐색하고, 표현하는 ‘사고의 여정’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