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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릉이 남긴 네 가지 질문 (불교·통일·바다·죽음의 경계에서)

by see-sky 2025. 4. 2.

문무대왕릉 사진
문무대왕릉

문무대왕릉은 한국사에서 유일한 수중릉이며, 그 존재만으로도 신비롭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이색적인 무덤' 이상의 의미가 이곳에는 담겨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문무왕의 죽음을 통해 신라가 바다에 부여했던 상징, 불교적 세계관, 통일의 정치철학, 그리고 죽음에 대한 사유까지 함께 되짚어보며, 문무대왕릉이라는 공간이 품은 사중의 메시지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다시 읽어보고자 합니다.

바다로 간 왕, 그 결정에는 불교가 있었습니다

문무왕은 왜 자신의 무덤을 바다에 남기고자 하셨을까요? 많은 분들께서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겠다'는 문무왕의 유언을 떠올리시지만, 이 유언의 이면에는 단순한 안보의식 이상으로 깊은 불교적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신라의 불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닌, 국가 통치의 철학적 기반이었습니다. 특히 문무왕의 시대에는 불교의 ‘공(空)’ 사상과 ‘윤회’ 개념이 정치적 기획에 활용되곤 했습니다. 육신은 공허하고, 왕이라는 존재도 유한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할 때, 죽은 이후의 공간을 육지에서 벗어난 곳으로 설정하는 것은 세속 권력과 단절된 이상적 경계 설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바다’는 불교적으로도 중요한 공간입니다. 그것은 생사의 경계이자 번뇌의 바다(生死海)이며, 동시에 깨달음으로 향하는 통로입니다. 문무왕이 동해의 수중바위에 스스로의 유골을 묻도록 한 선택은, 자신의 죽음을 단순한 통치자의 퇴장이 아닌, 보살행의 연장선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해석은 실제로도 불교 사료에 근거를 둡니다. 『삼국유사』에는 문무왕이 선문염송(禪門拈頌)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등장하며, 왕이 되기 전 이미 불교 수행에 대한 높은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는 기록도 존재합니다. 문무대왕릉은 바로 이러한 사상적 죽음의 선언이자, 물리적 무덤이었던 것입니다.

용이 된 왕의 바다, 그 속에 통일의 정치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문무왕을 ‘삼국을 통일한 왕’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단순히 군사적 업적만으로 이룩된 것이 아니라, 신라 내부의 질서 재편, 국제 정세 조율, 종교적 상징 정치가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당시 문무왕이 통일을 완수한 이후에도 가장 강하게 인식하고 있던 위협은 외부에서의 침입이 아닌, 내부의 분열과 권력 재편의 문제였습니다. 이때 선택된 상징적 해법이 바로 ‘바다로의 귀환’입니다. 문무왕은 자신의 육신을 정치의 중심인 경주에서 멀리 떨어뜨려, 사후에도 권력을 잇거나 정치 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적 메시지를 남기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바다는 통일 이후 신라가 안고 있는 외부와의 긴장 관계, 특히 왜(倭)와의 해양 안보를 상징적으로 방어하는 공간으로 재배치되었습니다. 즉, 문무왕은 죽음을 통해 국가의 안보 담론을 형성하고, 정치적 긴장과 통합의 시선을 바다로 돌리신 것입니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 우리가 '문무대왕릉은 바다에 있다'라고 말할 때, 당시 신라가 해양을 어떻게 정치화했는가에 대한 통찰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문무왕의 ‘수중릉’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국가와 바다, 권력과 죽음이 교차하는 기획된 장소였던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설계한 왕, 그리고 그 물음의 현재성

문무대왕릉은 단지 유골이 바다에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곳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에 대한 한 통치자의 철학적 유언입니다. 그리고 그 유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죽음을 망각하려 합니다. 그러나 문무왕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묻고 계십니다. 자신은 더 이상 육지의 왕이 아니며, 파도와 바람, 자연의 일부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겠다는 고백은 자연과 인간, 권력과 무상(無常)의 관계를 통찰한 깊은 선언입니다.

문무대왕릉 앞에 서면, 바다 한가운데 작은 바위 하나가 솟아 있고, 그 위로 파도가 부딪치며 끊임없이 모양을 바꿉니다. 그것은 무덤이 아니라, 끊임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삶의 형상입니다. 그리고 그 바위는 관람객에게 말없이 속삭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되, 살아 있음에 충실하라”라고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과연 이런 죽음을 설계할 수 있을까요? 권력자이든 시민이든, 누군가의 죽음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질문이 될 수 있을까요? 문무왕은 유언 하나로, 무덤 하나로, 하나의 철학을 남기셨습니다. 죽음조차도 살아 있는 정치로 만든 왕이셨습니다.

경주의 바닷가에서 문무왕의 수중릉을 마주한다는 것은, 단지 ‘특이한 무덤’을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다라는 공간 속에 불교적 사유, 정치적 선언, 통일의 상징, 인간의 죽음에 대한 질문이 녹아든 복합적 공간을 마주하는 일입니다.

문무대왕릉은 더 이상 유적지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 질문이며, 삶과 죽음, 권력과 무상의 균형을 묻는 살아 있는 철학의 무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