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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의 역사를 다시본다 (장안사, 기장읍성, 기장왜성)

by see-sky 2025. 6. 9.

기장 장안사 사진
장안사

부산 기장은 일반적인 해안 관광지가 아닙니다. 신라의 고찰 장안사, 조선의 방어거점 기장읍성, 임진왜란의 격전지 기장왜성까지 천 년의 시간과 역사가 중첩된 특별한 공간입니다. 이 글에서는 기장을 역사로 깊게 바라보며, 바다와 산, 사람과 전쟁, 종교와 건축이 만나는 세 곳을 따라 기장 역사여행의 진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장안사, 천년의 불심이 머무는 신라 고찰

기장의 장안사는 신라 진흥왕 7년(546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부산 최고(最古)의 사찰 중 하나입니다. 해동 불교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이곳은, 단지 오래된 사찰이 아닌 불교가 한반도 동남부로 퍼져나간 중심 축이었습니다. 특히 산세 깊은 장안산 골짜기 안에 들어선 이 절은 마치 신선의 거처 같은 고요함과 성스러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관광이 아닌 정신적 사색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장안사는 그 긴 역사 동안 수차례 전소와 재건을 겪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학문과 불심이 교차하는 산중 강학소 역할도 수행하였습니다. 특히 '범종각'과 '응진전', 그리고 최근 복원된 '대웅전'은 신라 후기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불교건축사적 흐름을 압축해 보여주는 귀중한 유산입니다. 또한 사찰 주변의 암자, 약수터, 그리고 옛 선비들이 즐겨 찾았던 바위글씨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 단순한 종교공간을 넘어선 기장 인문지리의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장안사의 매력은 사계절 어느 때 찾아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봄의 벚꽃,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속에서 불심과 자연이 하나 되어, 과거와 현재가 중첩된 시간 여행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특히 요즘처럼 빠른 삶에 지친 도시인들에게는, 이곳의 정적인 분위기 자체가 하나의 ‘명상 공간’이자 ‘시간의 멈춤’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기장읍성과 옛 포구, 동래보다 먼저 있었던 해안의 전략지

많은 분들이 부산의 역사를 말할 때 '동래'를 먼저 떠올리시지만, 사실 기장은 동래보다도 앞선 해양 교통과 방어의 요충지였습니다. 고려와 조선 초기에 기록된 '기장현'은 동해안 무역과 조세 운송, 그리고 왜구 방어의 최전선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를 뒷받침하듯 기장읍성은 지금도 그 유구한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기장읍성은 조선 중기에 축성되었으며, 당시 왜구의 빈번한 침입을 막기 위해 동해안 일대의 읍성 중 가장 빠르게 축조된 방어성 중 하나입니다. 특히 현존하는 동문터와 성벽 일부는 기장의 행정과 군사의 이중 기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성벽 아래에 놓인 기장천은 방어와 수송을 동시에 수행하던 전략적 요소였습니다.

읍성 근처에는 과거 기장의 옛 포구였던 대변항과 연화리 일대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어업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조운선과 왜구 방어선이 교차하던 중요 해상로였기에, 지역사적 가치 또한 상당합니다. 지금은 횟집이 즐비한 관광지로 바뀌었지만, 조선 시대에는 기장현의 해양 사령부 기능을 수행하던 본진 역할을 했다는 점은 역사적 재조명이 필요합니다.

기장읍성과 포구는 그 자체로 ‘작은 도시국가’ 같은 기능을 했던 과거의 흔적이며, 현재 도시화된 부산에서도 드물게 행정, 군사, 경제 기능이 한 지점에 집중되었던 역사 구조를 보여주는 귀한 장소입니다.

기장왜성, 임진왜란의 포성이 남긴 시간의 흔적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왜군은 부산을 시작으로 빠르게 한반도에 침투하였고, 기장 또한 그 침공 루트의 첫 번째 중계지 중 하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부대가 기장에 왜성을 축조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기장왜성’이라 부르는 임진왜란기의 왜성 유적입니다.

기장왜성은 타 왜성과 달리, 해안과 내륙 사이 중간지점에 축조되어 있는데, 이는 해상 병참과 내륙 진입을 동시에 겨냥한 전략적 위치 선정으로 이해됩니다. 전체적으로 불규칙한 다각형 구조에 조총 진형을 고려한 교차 사격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동래성과의 연결 통로 및 수로 확보 등, 당시 왜군의 전술적 의도를 생생히 보여주는 구조물입니다.

현재 기장왜성은 일부 성곽과 기단부만이 남아 있지만, 주변 마을과 지형을 함께 보면 전장이자 주둔지, 그리고 포로수용소로서의 복합 기능을 했던 흔적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특히 최근 부산시와 문화재청이 협력해 유적 정비사업을 시작하면서, 기장왜성의 군사·고고학적 가치가 점차 복원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기장왜성은 한일 간 역사 논쟁 속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정복의 흔적이 아니라, 전쟁의 실상과 평화의 필요성을 되새기게 하는 유적이기에, 학생·연구자·관광객 모두에게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기장은 단순한 해안 관광지가 아닌, 신라의 불심, 조선의 전략, 전쟁의 상흔이 공존하는 입체적 역사 공간입니다. 장안사에서 불교의 숨결을 느끼고, 읍성과 포구에서 옛 행정과 교역의 중심을 거닐며, 왜성에서 전쟁과 평화를 성찰할 수 있는 이 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닌 ‘기억의 순례’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기장을 본다는 것은, 단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남겨진 시간과 사람의 결을 체험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