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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만난 근대교육, 약령시장시장, 병원의 시간들

by see-sky 2025. 3. 17.

대구 약령시 거리 사진
대구 약경시 거리

대구는 흔히 무더위와 패션, 교통 중심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걸어보면, 골목마다 역사의 자락이 겹겹이 쌓여 있는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근대화의 문을 가장 먼저 연 도시 중 하나로서, 대구는 ‘학교’, ‘시장’, ‘병원’이라는 공간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대구 구도심 속 근대의 출발점을 따라 걸으며, 그 안에 녹아 있는 교육, 상업, 의료의 흔적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근대의 문을 연 교실 – 대구에서 시작된 교육의 기억

대구는 조선 말기부터 ‘지식의 도시’로 알려져 왔습니다. 유학의 전통이 깊은 남부지방 중에서도 대구는 서원과 향교가 밀집해 있었고, 조선 후기에는 전국에서 유생들이 모여드는 문화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근대 교육’은 1890년대 말, 대구의 작은 교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장소는 **계성학교**와 **대구제일고등학교(구 대구고보)**입니다. 이 두 학교는 각각 미국 북장로교와 일본 제국 교육정책 아래 설립되었지만, 모두 대구의 젊은 세대에게 ‘글을 넘어 시대를 가르친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계성학교는 단순한 선교학교가 아니었습니다. 여성 교육과 간호사 양성, 유아 교육까지 확장하며 근대 교육의 보편화를 이끌었고, 3.1 운동 전후로는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비밀 독립운동 거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대구 중구 계산동 일대는 이들 학교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정식 박물관은 아니지만, 골목을 걷다 보면 ‘옛 학교 터’라 적힌 작은 표지석과 교회 담장 사이에 남은 계단, 오래된 기숙사 건물이 불쑥 나타납니다. 이 공간들은 말 그대로 ‘야외 역사 교실’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넘어, 시대를 깨우고 저항의 씨앗을 뿌렸던 공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여행자 여러분께서 이 골목을 지나치신다면, 단지 옛 건물을 보는 것에 그치지 마시고, 그 속에서 펜 대신 선언문을 쥐었던 젊은이들의 마음을 상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교육은 지식만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바꾸는 작은 불씨가 될 수 있음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과 근대가 만난 거리 – 약령시장에서 시작된 상업의 길

대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장소 중 하나는 바로 **약령시장**입니다. 그러나 이 시장이 단순한 약재 유통 지라는 인식은, 그 본질을 반쯤 놓치는 것입니다. 약령시는 17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전통시장으로, 근대 대구 상업의 출발점이자 조선 후기 **동서 의학 교류의 중심지**였습니다. 더불어, 상업을 넘어 의료와 지식, 공동체가 융합된 복합문화공간이기도 했습니다.

1890년대 이후, 일본과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약재와 의료기구가 이 시장을 통해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시장 내부에는 ‘한약방’과 함께 ‘양약방’이 공존하는 독특한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두 약방은 단순한 상업경쟁을 넘어서, ‘전통 대 현대’라는 상징적 대립 구도를 만들어냈습니다. 특히, 약령시장은 **대구지역 여성 상인들의 조직적인 참여**로 유명했으며, 근대 여성 경제 활동의 출발지 중 하나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현재의 약령시장은 관광지로 재구성되어 있지만, 옛 상인의 집터, 약재창고, 오래된 상점 간판 등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골목 구석구석을 걷다 보면, 향긋한 한약 냄새 너머로 지난 세대의 거래 소리와 시장의 활기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이곳은 상업이 단순한 이윤 창출을 넘어서, 공동체의 건강과 사회 구조를 연결 짓던 ‘살아 있는 경제 현장’이었습니다.

골목 끝에 자리한 ‘약령시 한의학 박물관’은 작지만 꼭 들러보실 만한 장소입니다. 전통의학의 흐름 속에 대구 상권이 어떻게 성장했고, 근대 도시로 변화했는지를 직접 보고, 만지고, 이해하실 수 있는 공간입니다. 시장은 곧 사회의 거울입니다. 대구의 약령시장을 따라 걸으시면서, 근대 상업이 어떻게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는지를 느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국경 없는 치료의 공간 – 대구에서 태어난 한국 근대 의료

많은 분들께서는 서울 제중원을 한국 근대 의료의 출발점으로 기억하시겠지만, **대구는 지방 최초의 서양식 병원이 설립된 도시**였습니다. 1899년 설립된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당시 제중원 분원)**은 단순한 병원이 아니라, 근대 의료 교육, 간호사 양성, 공공보건을 함께 실천한 ‘의료 종합학교’였습니다.

당시 병원 건물은 지금의 동산동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현재는 ‘동산병원 역사관’으로 복원되어 일반 관람도 가능합니다. 이곳은 단순한 병실이 아니라, **기독교 선교사들이 직접 수술을 집도하고 의학을 가르친 공간**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인 환자들은 서양의학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있었지만, 무료 진료와 깨끗한 위생 환경 덕분에 점차 신뢰를 얻게 되었고, 대구는 곧 전국에서 환자가 찾아오는 의료 중심지로 발전하였습니다.

또한 이 병원에서는 **한국 최초의 간호학교 중 하나**가 운영되었으며, 여성들이 전문직으로 사회에 진출하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이는 단지 의학의 발전이 아니라, **여성 인권과 교육의 확장**이라는 사회 변화로 이어졌습니다. 병원은 단순히 아픈 사람을 고치는 곳이 아니라, 낡은 구조를 깨고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작은 혁명’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현재 동산의료원 뒤편 골목에서는 여전히 100년 전과 같은 돌계단과 적벽돌 건물을 보실 수 있습니다. 병원 담장을 따라 걸으시다 보면, 그 시절 조선인 간호사가 가르침을 받던 교실 창문을 지나게 되고, 선교사들이 지내던 목조 숙소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이 모든 흔적들이 바로 한국 근대 의료가 지방에서 어떻게 시작되었고, 지역사회와 어떤 방식으로 연대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교과서입니다.

대구는 일반적인 큰 도시가 아닙니다. 이 도시는 골목마다 근대가 피어났고, 골목마다 배움과 치료, 장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학교, 시장, 병원—이 세 공간은 단순한 기능의 장소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살아 있는 주체였습니다. 여행자 여러분께서 대구를 방문하시게 된다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깊은 시간의 결을 따라 걸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곳에서 진짜 ‘대한민국의 근대’가 시작되었음을 체감하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