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서문시장은 벌써 조선시대 상권의 중심지로 발전되었습니다. 이 시장은 일제강점기의 경제 억압, 전쟁과 화재,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도 묵묵히 생명을 이어온 대한민국 유통사의 살아 있는 역사 공간입니다. 특히 서문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항일운동의 숨은 거점이자, 상인정신이 집약된 장소, 그리고 복원과 재건의 상징으로서 특별한 문화적 가치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대구 서문시장의 100년을 따라가며, 시간의 무게를 품은 시장 공간의 진짜 이야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조선의 장터에서 근대 대구 경제의 심장으로: 서문시장의 100년
서문시장은 조선 후기인 1669년 무렵부터 그 존재가 확인되며, 본래 대구 읍성의 서쪽 문 밖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장터였습니다. 이곳은 대구가 경상감영이 위치한 행정 중심지이자 교통 요지였기 때문에, 상업 활동 또한 급속도로 확산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주로 한약재, 직물, 농산물 중심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대구 특산물인 무명천과 한약재가 특히 유명하였습니다. 근대화 시기를 지나며 서문시장은 더욱 조직적이고 대형화된 유통망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대구 상인들의 자발적 조직인 ‘상업조합’이 구성되며 시장은 일본의 경제 통제에 맞서는 조용한 저항의 상징으로 기능했습니다. 일제는 한국의 자본과 유통을 장악하려는 시도에 서문시장 상인들은 꿋꿋하게 국산품 장려운동에 나서며, 경제적 항일운동을 실천하였습니다. 광복 이후에도 서문시장은 전쟁과 도시화의 혼란 속에서도 대구 시민들의 삶의 중심 역할을 이어갔으며, 1980~1990년대에는 남문시장, 칠성시장, 교동시장 등과 함께 대구 5대 시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게 됩니다. 특히 섬유와 의류, 혼수용품, 식자재 시장으로의 분화는 서문시장 특유의 기능적 다양성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처럼 서문시장은 단순한 재래시장이 아닌, 조선 후기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한국 유통의 연대기라 할 수 있으며, 그 안에는 상인 정신과 생존 본능, 공동체의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항일의 물결과 화염 속의 기억: 일제강점기와 서문시장 화재의 상흔
일제강점기는 서문시장에 있어 상업 위축 기를 넘어, 경제적 독립과 항일의 상징으로서의 새로운 역할이 부여된 시기였습니다. 일본은 대구와 부산 등 주요 도시에 일본인 전용 상권을 만들고, 조선 상권을 위축시키려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서문시장 상인들은 조선산 물품 사용 운동을 독려하고, 일본 상품 불매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제 활동을 넘어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조용한 저항의 방식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을 모으거나, 애국지사들을 물품 제공으로 도운 일화도 전해지며, 서문시장은 물리적 거점이자 정신적 저항의 공간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지금도 일부 구간에서는 항일 운동 관련 인물들의 흔적과 관련 기록이 전시되어 있어, 단순한 시장이 아닌 역사 교육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 후 2005년, 2016년 두 차례에 걸친 대형 화재는 서문시장의 위기를 극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2016년의 화재는 제4지구를 전소시켜 수백 개 점포가 잿더미가 되었고, 대구 시민뿐 아니라 전국민적 관심과 연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 소방관들의 헌신과 상인들의 자구노력, 그리고 정부의 복원 지원이 함께 이어지며, 서문시장은 폐허 속에서도 다시 일어섰습니다. 현재는 화재 흔적을 일부 보존한 구조물과 함께 ‘기억의 골목’ 프로젝트가 조성되어 있으며, 화재 복구과정은 도시재생의 대표 사례로도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는 서문시장이 단순히 상품 거래의 장이 아니라, 공동체적 복원의 상징이 된 이유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상인의 철학과 오늘의 서문시장: 생존, 연대, 그리고 유통의 미래
서문시장 상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공생”의 정신입니다. 조선 후기부터 시장이 성장하면서, 이곳의 상인들은 서로를 경쟁자가 아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식해 왔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서문시장을 다른 재래시장과 차별화시키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2024년 현재, 서문시장은 단순한 장보기 공간을 넘어, 야시장, 문화공연, 체험형 프로그램을 결합한 복합 문화형 시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청년 상인 창업존, 프랜차이즈와 연계한 팝업스토어 등은 새로운 고객층 유입을 유도하며 MZ세대와의 접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여전히 전통적인 상인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격 협상보다는 신뢰, 하루 매출보다는 장기 단골 확보, 그리고 ‘돈보다 사람’이라는 구호는 단순히 미화된 이상이 아니라, 실제 서문시장 내 다수 상인이 지키는 철칙입니다. 현재 서문시장에는 약 4,000여 개 점포가 운영 중이며, 하루 유동인구는 주말 기준 5~7만 명에 달합니다. 대구시와 문화재청, 그리고 지역 상인회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서문시장 역사관 건립’도 논의 중에 있어, 이 공간은 앞으로 더욱 복합적인 교육·관광 중심지로 거듭날 전망입니다. 결국, 서문시장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불에 타지 않는 상인정신, 공동체적 회복력, 도시 유통의 상징성을 품은 이 공간은, 단순한 장보기가 아닌 시간을 사고파는 역사적 체험의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대구 서문시장은 350년이 넘는 시간을 견디며, 조선시대 장터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숨은 거점이 되었고, 현대에는 화재와 도시 재건의 상징으로 거듭났습니다. 상인들의 철학과 지역공동체의 힘, 그리고 유통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이곳은 단순한 시장이 아닙니다. 여러분께서도 평범한 ‘재래시장 방문’을 넘어, 서문시장에서 대한민국 경제사의 진짜 심장소리를 직접 들어보시는 역사여행을 떠나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