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바다가 지키고 바람이 전한 조선의 기억, 서산에서 걷는 역사

by see-sky 2025. 5. 14.

해미읍성

충청남도 서산은 바다와 산 사이에 자리한 조용한 도시입니다. 이 지역은 조선 후기 내포 문화의 중심지로, 불교와 유교, 천주교가 공존하고 충돌했던 공간이며, 그 안에는 한반도의 중요한 역사 흐름이 조용히 새겨져 있습니다. 특히 해미읍성은 단순한 성곽을 넘어, 국가 권력과 종교, 민중의 믿음이 부딪힌 상징적 장소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서산’이라는 도시의 지리적 구조와 그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며,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서산의 역사 기행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산과 바다가 만든 경계, 서산의 지리와 전략적 위치

서산은 지리적으로 매우 독특한 구조를 지닌 도시입니다. 서쪽으로는 태안반도를 끼고 바다를 마주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예산과 홍성의 내륙지방이 맞닿아 있어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해안과 내륙을 잇고 있는 전략적 통로’ 역할을 해왔습니다. 조선 시대 이 지역은 군사적·행정적 요충지로 꼽히며, 수군과 육군의 교차지점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해미읍성은 충청도 병마절도사영이 설치된 장소로, 해안 경계를 담당하는 군사 거점이자 행정 중심지였습니다. 서산에서 바다를 이용해 올라온 외세를 막고, 육로를 통해 들어오는 경로를 관리하는 쌍방향 요새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만큼 이 도시에는 단순한 성곽을 넘어, ‘경계의 도시’라는 정체성이 오래도록 남아 있습니다.

또한 서산은 자연 지형 덕분에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산세가 험하지 않고 들판과 해안선이 넓게 펼쳐져 있어, 불교의 사찰은 물론이고 천주교 신자들이 은신하기에 적절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특성은 훗날 해미읍성에서 발생하는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의 배경과도 연결됩니다.

서산은 그 자체가 하나의 ‘문’이었습니다. 바다와 산이 만나고, 전통과 변화가 교차하는 입구로서 이 도시는 단지 지리적 거점이 아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식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해미읍성의 바람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해미읍성은 서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유적입니다. 지금은 문화재로 보존되어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조선 후기에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한 처형장이었고, 국가 권력이 종교와 민중의 믿음을 통제하던 중심 무대였습니다.

해미읍성의 외곽 성벽은 비교적 낮고 단단한 돌로 쌓여 있으며, 내부는 그리 넓지 않지만 단아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바로 '형장터'와 '감옥터'입니다. 순교자들은 이곳에서 신문을 받고 처형당했으며, 그들의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성을 걸을 때, 단순한 유적이 아닌 ‘한 시대의 침묵’을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바람이 많은 날, 해미읍성은 아주 독특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조용히 스치는 바람 소리와 성벽을 따라 흔들리는 풀들의 움직임은 마치 당시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직 남아 있는 듯한 감정을 줍니다. 역사가 기록하지 못한 부분, 말로 남기지 못한 감정들이 바람을 타고 여전히 이곳을 맴돌고 있는 듯합니다.

해미읍성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백 명의 신자들이 순교한 중심지입니다. 당시 조선은 서학이라 불린 천주교를 ‘국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상’으로 간주했고, 해미는 그 탄압의 상징적 무대였습니다. 지금도 읍성 안에 들어서면, 그들의 이름이 적힌 순교자비와 설명문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은 ‘이곳에서 죽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왜 죽어야 했는지’를 질문하는 자세입니다.

해미읍성은 조용한 성입니다. 하지만 그 조용함은 무력감이 아니라, 오히려 깊은 저항의 기억입니다. 이 성은 말 대신 바람으로, 종소리 대신 침묵으로 역사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없는 유산, 서산의 사찰과 골목이 전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

서산의 역사기행은 해미읍성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도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불교와 민속이 어우러진 다른 공간들을 함께 걸어보셔야 합니다.

서산의 대표적인 고찰인 개심사는 백제시대 창건으로 알려진 고찰이며, 조선 중기 이후 유학의 압박 속에서도 살아남은 ‘자연과 사색의 공간’입니다. 개심사는 그 자체로는 웅장하지 않지만, 기와 아래 스며든 이끼, 담벼락 옆을 걷는 고요한 길, 법당 앞마당의 느티나무 하나까지 모두가 침묵 속에서 시대의 단단함을 전해줍니다.

또한 서산 시내에는 지금도 옛 시장과 골목들이 남아 있습니다. 서산 중앙시장 뒤편 골목에는 일제강점기와 1960~70년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그곳에서 장을 보거나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 속에서도 세월을 견뎌온 삶의 흔적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사는 거대한 역사보다 더 진한 감동을 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서산에는 바다를 마주한 절경들이 많습니다. 간월암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이 되었다가 육지가 되는 독특한 암자로, 조선 시대 스님들이 수도와 사색을 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일몰은 단지 자연의 풍경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역사의 무게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장면입니다.

서산은 조용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시대를 견디며 살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들은 성곽의 돌, 절의 나무, 골목의 그림자에 조용히 남아 있습니다. 이 도시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그 바람 속에서 무슨 말을 들으셨습니까?” 그리고 여행자 여러분의 발걸음이 조용해질수록, 서산은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