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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망각된 전쟁 유산들 (전쟁유산, 피난수도, 잊힌 철길)

by see-sky 2025. 3. 9.

부산의 감천마을 사진
부산의 감천마을

부산은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한국 현대사의 피난수도였으며 철길 위에 문명을 실어 나르고 사람을 지탱했던 ‘전쟁 도시’였다. 지금은 사라지고 잊힌 철길과 피란민들의 흔적 속에서, 우리는 진짜 부산의 역사와 마주할 수 있다.

피난이 만든 도시, 부산이라는 예외의 공간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하자 수많은 국민들이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안전지대로 간택된 도시가 바로 부산이었다. 전쟁의 피난처로서 부산은 단순한 도시 기능을 넘어 ‘임시 수도’로서 국가의 중심이 되는 예외적인 도시로 탈바꿈한다.

당시 서울을 비롯한 북부 지역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부산 곳곳에 산동네를 형성했고, 구포, 초량, 감천, 영도 등지에는 천막촌과 슬레이트 판잣집이 이어졌다. 이곳은 단순히 주거지를 넘어,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고 공동체를 형성해 간 기억의 땅이다.

특히 초량동 일대는 외부에서 온 사람들의 공동체가 자리 잡은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이곳에는 수도 없이 많은 학교, 사찰, 교회가 세워졌다. 정부 기관들도 다수 내려와 근대 관청 문화가 피어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화려한 커피숍과 외국인 거리로 바뀌었지만, 그 이면에는 피난수도 시절 대한민국의 생존이 있었다.

부산이 전쟁 중에도 함락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도시의 지형학적 구조뿐 아니라 철도와 항만이라는 교통망 덕분이었다. 바로 다음 이야기가 이 철도에 관한 것이다.

선로 위의 국가, 전쟁 속 부산 철도의 재발견

전쟁이라는 혼돈 속에 피난민을 실어 나르고 보급품을 이동시키던 ‘국가의 혈관’은 철도였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역사적 철도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다. 부산역만 알고 있지만, 그 주변에 존재했던 수많은 노선과 선로의 잔해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범일동 철도차량기지’와 ‘부산진역’이다. 현재는 복합문화공간이나 상업지구로 개발된 이곳은 1950년대 철도 물류의 핵심이자, 군수물자의 핵심 공급지였다. 부산진역은 철도 사령부가 있던 곳이었으며, 군인과 물자, 환자들이 이곳을 통해 이동했다.

또한 영도와 부산 본토를 연결하는 철교가 실제로 존재했으며, 이는 피란민 수송의 생명선 역할을 했다. 지금은 차량 교통 중심의 부산대교, 영도대교로 바뀌었지만, 과거엔 열차가 사람을 태우고 이 철교를 달렸다.

이밖에도 구포역 인근에선 북한 지역에서 끌려온 노역자들이 철로를 정비했고, 일부는 전후에도 돌아가지 못한 채 부산에 정착해 지역 공동체를 형성했다. 철도는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니었고, 전쟁을 통과한 기억의 궤도였다.

이제는 사라진 철로의 흔적들 — 초량동 옛 철도 창고, 범일동 전차 정비소, 용두산 근처의 폐선 터널 — 이곳들을 걸으며 우리는 역사적 망각을 되돌릴 수 있다.

도시의 틈에서 기억을 복원하다 

부산은 너무 빠르게 미래로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도시 곳곳에 남겨졌던 전쟁의 흔적들, 철도의 폐선, 피난민의 기억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하지만 유심히 보면 여전히 남은 기억의 잔해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초량 이야기길에는 피란민의 삶을 그린 벽화가 있다. 이는 단지 미관을 위한 장식물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인생과 연관된 기록이다. 초량 초등학교 담벼락, 부산대학병원 뒤편 계단길, 고지대의 마을 공동 수도 등은 모두 피난 시절의 유산이다.

또한 감천문화마을이 예술촌으로 알려지기 전, 그곳은 군인 가족, 피란민, 실향민들이 모여 살던 ‘임시 도시’였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은 일제 강점기의 흔적과 6.25 전쟁 당시 도시확장의 부산물이었다.

이곳을 걷는다는 건 과거를 소비하는 여행이 아니라, 기억을 복원하는 행위다. 빠른 도시화와 개발로 인해 묻힌 역사를 꺼내고, 그 위에 오늘의 나를 위치시켜 보는 것이다.

철로가 지나갔던 자리, 한때 물자가 오갔던 창고, 피란민의 아들딸이 다녔던 학교의 벽... 이 모든 곳이 부산을 ‘현재의 부산’으로 만든 주역이다. 그렇기에 이 여행은 과거의 연민이 아니라, 도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부산은 흔히 말하는  ‘살아남은 도시’가 아니다. 철도 위에 다시 지어진 도시, 전쟁이 만든 임시 수도, 그리고 그 속에서 꿋꿋이 삶을 이어간 사람들의 도시였다. 지금 우리가 걷는 골목과 터널, 건물과 철로는 그들의 삶이 남긴 잔향이다.

이제 우리는 그 흔적을 무심히 지나치지 말고, ‘기억의 도시 부산’을 다시 걷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잊힌 철로를 따라 걷다 보면, 그 끝에 우리가 정말 몰랐던 부산의 역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부산은 해수욕장과  같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수많은 역사 자원들, 그리고 해양 산업의 엄청난 발달로  세계적인 거대 도시가 되었지만 역사 속으로는 아프고도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부산 여행을 하며 부산의 아픈 역사를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