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에게 설악산은 아름다운 풍경과 신화적 설화의 공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바위와 숲, 계곡 아래엔 총탄 자국과 승려의 침묵, 조선의 흔적이 조용히 흐른다. 이 글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설악산의 실질적 역사, 특히 전쟁의 흔적과 불교문화의 충돌과 공존을 중심으로 기록된 시간을 따라 걸어본다. 단순한 자연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의 산, 설악산을 다시 바라본다.
신화 뒤의 진실, 설악산에 기록된 조선의 조각들
설악산은 수많은 전설로 둘러싸여 있다. 장군봉에 얽힌 호랑이 이야기, 권금성의 금화 전설, 울산바위의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기록들은 이보다 훨씬 흥미롭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권금성이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전설 속 요새로만 알고 있지만,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권금성에 대한 언급이 명확히 나온다. 1450년대 문종실록에는 ‘간성 동북 산성에 적이 침범하니, 백성들이 성에 피신하여 구사일생으로 살았다’는 구절이 남아 있으며, 이는 지금의 권금성 지역으로 추정된다.
또한 설악산은 조선 후기 문인들의 비공식 기행처로 자주 등장했다. 실학자 이덕무는 《청장관전서》에 설악산 계곡을 지나 백담사까지의 여정을 기록하며, ‘강원의 산은 그 칠 돼, 설악은 유순하니 이 또한 조용한 학문에 적합하다’고 적었다. 특히 조선시대 중기 이후 강원도는 정치적으로 유배지의 이미지가 강했으나, 설악산은 유배가 아닌 자발적 칩거지로 인식되기도 했다. 지금도 백담사 근처에는 실제로 조선 말기의 퇴관 유학자들이 남긴 비석과 초암터가 남아 있다.
설악산에 얽힌 설화와 달리, 기록된 설악은 피신, 사유, 은둔의 장소였다. 바위마다 전설이 아닌 이름 없는 문인과 승려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고, 그들의 기록은 지금도 남아 당시 설악이 단순한 자연이 아닌 ‘정치 밖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총성과 침묵, 설악산에 남은 전쟁의 흔적들
설악산은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 중 하나였다. 특히 신흥사, 백담사, 봉정암 일대는 군사적으로 활용되었으며, 이와 관련한 흔적은 현재도 일부 장소에 남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신흥사에 가면 눈치채지 못하지만, 법당 뒤편 외진 암자 자락에는 낡은 콘크리트 벙커의 잔해가 있다. 이는 1951년 겨울, 미군과 국군이 이 지역에 방어선을 구축한 흔적으로, 당시 신흥사 일부는 야전병원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1951년 설악산 일대에는 인민군과 중공군이 강릉~양양 축선을 따라 침투하면서, 이 일대 산악지대가 전투구역으로 바뀌었다. 백담사는 그 중심에 있었다. 당시 주지였던 스님이 산속으로 피신하면서도, 사찰 내 불경과 문화재는 바위 밑에 묻어 지켜졌다고 전한다. 현재도 백담사 내부에는 전쟁 직후의 복원 기록이 일부 사진으로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의미 있는 장소는 봉정암이다. 6.25 전쟁 중 중공군 일부가 설악산을 넘어 남하하던 중 봉정암에서 물자를 확보하려 했고, 이를 막던 군인이 당시 암자 내에서 전사했다는 구술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2000년대 중반까지도 봉정암 뒤편 암벽엔 총탄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는 목격담이 전해진다.
설악산의 사찰들은 무너졌고 다시 세워졌지만, 그 시간은 아직도 곳곳의 침묵 속에 남아 있다. 사람들은 풍경만 보지만, 스님들은 그 바람 속에서 기억을 듣는다.
걷는다는 것, 설악산에서 만나는 침묵의 기록
설악산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자연을 향유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침묵 속에서 기억을 듣고, 발아래 숨어 있는 기록을 더듬는 행위다. 특히 설악산 국립공원 구역 안에는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비공식 문화재 흔적이 다수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마등령 인근의 폐석축은 흔히 등산객들에게는 그냥 무너진 옛 건물로 여겨지지만, 이는 1940년대 일본군이 설치한 소규모 통신 감시소의 흔적으로, 해방 후 철거된 뒤 흔적만 남아 있다.
또한 오세암 가는 길목에는 ‘스님들의 묵언 수행지’로 활용되던 암자터가 존재한다. 이는 신흥사 소속 승려들 사이에서 전해지는 구전 기록을 통해 알려진 장소이며, 아직도 고요한 새벽에 그곳을 지나면 예불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단순히 신비한 전설이 아니라, 말이 금기된 장소로서의 수행문화가 지금도 남아 있는 셈이다.
설악산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기능해왔다. 고려시대에는 국사의 수양처, 조선시대에는 은둔자의 서재, 일제강점기에는 민족지도자들의 도피처, 한국전쟁기에는 야전기지, 그리고 지금은 치유와 성찰의 공간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모든 기능은 결국 ‘기록’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된다. 누군가의 이야기, 글, 돌, 나무, 침묵, 기도… 설악산은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책이다.
그리고 그 책을 읽는 방법은 ‘말하지 않고 걷는 것’이다. 발걸음으로 페이지를 넘기며 우리는 그 옛날, 침묵 속에 쓰였던 기록들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설악산은 단지 전설 속의 신비로운 산이 아니다. 그곳엔 문인들의 기록, 전쟁의 총탄, 스님들의 침묵이 시간의 층위처럼 쌓여 있다. 여행자가 설악산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자연 감상이 아니라, 사라진 시간을 체험하는 일이다. 바람에 묻힌 기억과 돌에 새겨진 발자국을 따라, 전설을 넘어 기록의 설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