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는 흔하게 ‘관광지’, ‘리조트 도시’로 인식되지만, 그 아래에는 실향민의 상처, 분단의 구조, 항구도시의 민속적 삶이 조용히 숨 쉬고 있습니다. 이 글은 속초의 해변과 설악산 너머,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지층과 잊힌 사람들의 삶을 따라 걷는 여정입니다. 리조트 도시가 되기 전, 속초는 분단이 만든 예외의 공간이자, 기억이 겹겹이 쌓인 장소였습니다.
리조트 뒤에 감춰진 도시 — 실향과 분단의 흔적들
속초는 지금의 평화로운 이미지와는 달리, 본래 대한민국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해방 전까지 속초는 양양군에 속한 작은 어촌에 불과했고, 1945년까지 ‘읍’ 단위조차 아닌 ‘면’ 수준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전쟁 이후 속초는 대한민국의 국경 도시로 급부상하게 됩니다.
1950년, 속초에는 수많은 이북 출신의 피난민들이 유입되며, ‘실향민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함경도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아 지금도 속초 곳곳에서는 함경도 사투리와 음식, 풍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공간이 아바이마을입니다. 관광지로만 알려져 있지만, 이곳은 실향민들이 조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정착해 만든 삶의 터전이었습니다. 좁은 골목, 아바이순대 가게, 배를 타야만 건널 수 있는 갯배는 단절된 고향과 연결되지 못한 채 떠도는 정체성을 상징하는 구조물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950년대 국군과 유엔군이 점령한 뒤 속초는 군사·정보의 전략 요충지로 지정되었고, 해안선 전체가 철조망으로 둘러싸였습니다. 지금은 철거된 해안 철조망 일부와, 곳곳에 남아 있는 벙커 구조물, 초소 건물, 포대 진지 등은 그러한 흔적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속초는 바닷가 도시가 아닙니다. 바다에 의해 ‘쫓겨와서’ 정착한 사람들, 그리고 그 바다를 경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마주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분단의 도시입니다.
항구가 만든 삶, 잊힌 어민과 노동의 역사
많은 분들께서는 속초항을 크루즈나 수산시장과 연결하여 생각하시곤 합니다. 그러나 속초항의 역사는 단순한 어항이 아니었습니다. 속초는 동해 북부권에서 가장 이질적인 항구도시로, 군사, 정보, 피난, 노동이 얽혀 있었던 복합적 공간이었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속초항은 피난민과 군 보급품을 위한 임시 항구로 긴급 확장되었고, 1960~70년대에는 냉동어업의 중심지로 발달하게 됩니다. 특히, 북한 해역과 인접해 있다는 지리적 특성상 국가 안보와 민간 어업이 충돌하는 지점이기도 했습니다.
당시 속초항을 기반으로 활동했던 어민들은 모두 신분 조회를 거쳐야 했으며, 일정 구역 이상으로는 절대 출어가 금지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속초는 군과 민이 공존하지만, 동시에 감시받는 도시로 성장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속초 어민 문화는 함경도식 배 조직, 동해 특유의 오징어 말리기 문화, 해녀와 뗏목 어업 등 복합적인 전통이 이어졌지만, 관광지화된 이후 그 대부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현재도 속초항 구항의 뒤편에는 버려진 조선소, 녹슨 항만 크레인, 폐화물창고 등이 남아 있어, 당시 어업과 노동의 흔적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광객은 이곳을 지나치며 속초가 단지 오징어회 도시라는 오해 속에 머무르게 됩니다.
속초항은 바다와 닿아 있는 곳이 아니라, 분단의 전선, 노동의 기록, 삶과 감시가 얽힌 기억의 장소였던 것입니다.
민속, 종교, 삶이 교차한 속초의 문화적 지층
속초는 단지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만든 도시가 아닙니다. 이곳에는 오랫동안 이어져 온 토착 민속과 신앙, 사찰 문화도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특히 청호동 일대의 무속 신앙, 설악산 아래의 불교 유산, 실향민의 천주교 공동체가 함께 뒤엉킨 문화적 복합성이 매우 독특합니다.
속초에는 지금도 당굿과 제례가 지역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대포동 해맞이공원 부근의 서낭당, 장사동의 작은 무당집들에서는 지금도 정초굿과 치성문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분단 이후 유입된 신앙뿐 아니라, 오래된 동해안 민속이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점은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계십니다.
또한 속초에는 설악산의 불교 사찰 문화가 독특하게 형성되어 있는데, 흔히들 ‘신흥사’만 알고 계시지만, 그 주변에는 구한말 항일 승려들이 몸을 숨겼던 작은 암자들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설악산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암자 중 하나인 ‘영시암’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은신한 곳이라는 지역 구전이 전해집니다.
흥미로운 것은, 실향민 사회 속에서 천주교 공동체도 빠르게 확장되었다는 점입니다. 속초의 초기 성당들은 대부분 피난민에 의해 세워졌고, 그 성당의 모습은 고향의 교회를 따라 지어진 경우가 많아 북한 건축양식의 잔재가 남아 있는 독특한 사례들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속초는 단순히 관광과 자연이 아닌, 이질적인 종교·민속·생활문화가 중첩된 다층 도시입니다. 우리가 이곳을 걷는다는 건, 단지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 경계를 걷는 일입니다.
속초를 단지 '예쁜 동해안 도시'로 기억한다면, 그건 절반만 본 것입니다. 속초는 분단과 실향, 군사와 노동, 종교와 민속이 겹겹이 쌓인 경계의 도시입니다. 그 경계는 지금도 말없이 살아 있으며, 바닷가의 조용한 골목과 철거된 초소의 콘크리트 더미 위에서 조용히 숨을 쉽니다.
속초를 여행한다는 것은 과거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 묻힌 기억을 복원하는 일입니다. 그 기억은 곧 우리의 것이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역사의 감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