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 신촌에 위치한 연세대학교. 이 대학은 명문 사립대 이상의 가치를 지닌 공간입니다. 1885년의 광혜원부터 시작된 서양 의학과 기독교 정신, 1915년 연희전문학교의 건립, 그리고 현재의 글로벌 대학으로 이어지는 이 흐름은 한국 교육사와 개신교 역사, 근대 도시문화의 집약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와 함께 걸으며 연세대학교를 탐방하면, 단순한 캠퍼스 투어가 아닌 인문학적 가족 여행이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연세대학교의 핵심 건축 유산과 역사적 장소, 그리고 아이와 함께 걸을 수 있는 교육기행 코스를 세심히 안내드립니다.
연세대의 시작, 연희전문에서의 시간 되돌리기
연세대학교의 뿌리는 1915년 설립된 연희전문학교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작은 더 거슬러 올라가, 1885년 세브란스 의학당과 광혜원까지 확장됩니다. 한국 근대 교육과 서양 문명의 이식, 그리고 기독교 선교의 결합이라는 독특한 맥락 속에서 태동한 연세대는, 캠퍼스 건물 하나하나에 시대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캠퍼스 입구에 위치한 언더우드관은 연세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연희전문 시절 가장 먼저 세워진 건축물 중 하나로, 미국 선교사 호러스 G. 언더우드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지적·도덕적 교육을 실현하고자 했던 비전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붉은 벽돌과 간결한 고딕 양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교육철학이며, 아이와 함께 걷는다면 "이 학교는 단순한 공부의 장소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키운 공간이구나"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품게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언더우드 기념동을 둘러보면서, 선교와 교육이 결합된 시기의 사회적 배경을 이야기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조선 말기 서양 문물이 어떻게 들어왔고, 어떤 방식으로 학교라는 공간이 등장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지금까지 중요한 유산으로 남는지를 나누다 보면 교육이 교과서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됩니다.
캠퍼스 곳곳에 숨은 건축과 민주주의의 이야기
연세대학교는 흔한 교육공간이 아닙니다. 건물 하나하나가 근현대사, 민주주의, 건축문화와 얽혀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걷는다면, 건축의 미학을 넘어 우리 사회의 변화도 함께 배울 수 있는 특별한 시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백양관입니다. 백양관은 연세대학교의 대표 강의동이자,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습니다. 지금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오가며 공부하는 공간이지만, 과거에는 수많은 시위와 집회가 열렸던 정치·역사 교육의 현장이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백양로를 걷다 보면, 평범한 길 위에 담긴 비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역사적 건축물, 언더우드 가족묘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묘지는 연세대 캠퍼스 내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을 위해 평생을 바친 미국인 선교사 가족들의 무덤입니다. 단순한 묘역을 넘어, 봉사와 헌신이라는 가치가 물리적으로 보존된 공간입니다. 아이에게 "왜 외국인이 한국 땅에 묻혔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신앙, 역사, 세계시민정신에 대한 교육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중앙도서관, 채플관, 박물관 등 하나하나가 과거와 현재를 잇는 교육적 상징입니다. 각 건물 앞에는 간략한 설명판이 설치되어 있어, 아이와 함께 읽고 대화 나누기에 적합합니다. 연세대는 캠퍼스 전체가 마치 ‘야외 인문 박물관’처럼 구성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가족과 함께 걸으며 배우는 신촌 속 역사 산책 코스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신촌 일대는 근현대 서울 도시문화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학생가의 이미지가 아니라, 교육과 청춘, 문학과 민주주의, 개신교와 한국 사회의 접점이 응축된 공간입니다. 이러한 신촌의 분위기는 아이와 함께하는 역사기행에서 큰 교육적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가장 추천드리는 코스는 정문 → 언더우드관 → 백양관 → 민주광장 → 언더우드 가족묘 → 연세로 거리로 이어지는 루트입니다. 도보로 1시간 내외의 거리이며, 걷기 쉬운 경사와 잘 정비된 보행자 중심 동선이 특징입니다. 특히 연세로(차 없는 거리)는 아이와 함께 마음 놓고 걸으며 주변 문화공간과 서점, 교회 건축물 등을 함께 살펴볼 수 있어, 가족 기행에 최적화된 코스입니다.
또한 연세대 교정 안에는 야외 벤치와 피크닉 공간이 많아, 점심 도시락을 챙겨가면 간단한 피크닉도 가능합니다. 이는 아이들에게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함께 살아가는 지식을 배우는 공간"이라는 새로운 시각을 심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신촌의 주변 문화공간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과 연계하면,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심화할 수 있습니다. 교과서 속 정보가 현실의 장소와 연결될 때, 아이는 더 깊게 이해하게 됩니다. 연세대에서 시작된 작은 역사기행이 서울 전체의 근현대사 체험으로 확장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연세대학교는 한국 사회의 여러 전환점을 직접 품은 장소입니다. 건물, 도로, 광장, 묘역… 모든 공간에 시대의 의미가 스며 있습니다. 이 공간을 아이와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한 가족의 교육이자 한 사회의 계승입니다. 단순히 좋은 학교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학교가 지켜온 가치와 철학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오늘, 연세대 캠퍼스를 걸어보십시오. 그 속에서 배움의 본질과 사람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