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안암동. 이곳에 세워진 고려대학교는 명문대 이상의 의미를 지닌 교육 공간입니다. 붉은 벽돌과 고딕 양식의 건물들은 근대 교육의 상징이자, 한국 교육사의 격동과 이상이 겹쳐진 장소로 평가받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려대학교 캠퍼스를 중심으로, 건물 하나하나에 스며 있는 역사적 배경과 시대정신, 그리고 한국 근현대 교육의 흐름을 돌아보는 깊이 있는 역사 기행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단순한 학교 소개가 아닌, 건축과 사상의 기록으로서의 고려대를 함께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안암동의 붉은 벽돌, 고려대 건축물에 담긴 교육 철학
고려대학교 캠퍼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 건물들입니다. 외형적으로는 유럽의 중세 고딕 양식을 연상시키지만, 그 안에는 한국 근대 교육에 대한 강한 열망과 독립적인 학문 정신이 녹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건물인 본관(대학본부)은 1934년 완공된 석조건물로,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는 이례적으로 철저히 민족자본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이는 단순한 학사 행정 건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자주적 교육기관 건립에 대한 의지를 건축으로 표현한 상징적인 사례입니다. 본관 중앙의 시계탑은 당시 교육의 ‘시간’을 상징하며, 교육은 시대를 넘어 이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상징합니다.
또 다른 역사적 건물인 문과대학 본관(구 중앙도서관) 역시 붉은 벽돌과 석재가 조화를 이루는 구조로, 학문 탐구의 이상을 건축적으로 형상화한 장소입니다. 내부는 20세기 초반식 대형 홀 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분류됩니다.
이처럼 고려대의 주요 건축물은 단순한 기능적 공간을 넘어, 한국 교육의 독립성과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결과물입니다. 이는 다른 근대 대학들과 비교해도 유독 독창적이며, 설계에 참여한 조선건축가들의 신념과 교수진의 이상주의가 결합되어 형성된 형태입니다. 교육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다시 사상을 전한다는 사실을, 고려대학교는 캠퍼스 전체를 통해 조용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려대의 설립 이념과 시대별 교육 변화의 상징
고려대학교는 1905년 보성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 출발점은 개화기 민족 지식인들이 꿈꾸던 자주적 근대교육의 산실이었으며, 당시 조선에는 매우 드문 ‘전문학교’ 형태의 고등교육 기관이었습니다. 창립자인 이유인과 후원자 송진우, 김성수 등의 인물은 당시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억압적 교육을 넘어선 민족교육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였습니다.
보성전문이 고려대학교로 이름을 바꾼 시기는 1946년 광복 직후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명칭 변경이 아니라, 일제 식민 교육의 잔재를 벗어나 민족 독립과 학문의 자율성을 실현하려는 철학적 결단이었습니다. 특히 광복 이후에는 법학·문학·상학 등을 중심으로 폭넓은 인문사회계 학문이 확장되었고, 이는 오늘날 고려대가 정치·경제·법조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고려대학교는 군사정권 시대에도 민주주의 교육의 거점으로 기능했습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를 비롯해 수차례에 걸친 대규모 학생 시위와 교수 성명이 이어졌고, ‘정의’를 교훈으로 삼는 고려대의 정신은 이 시기에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이처럼 고려대학교의 교육사는 단지 교과과정의 변화가 아니라, 사회 변화에 저항하고 대응한 실천적 교육의 흐름이기도 합니다.
지금도 고려대의 여러 강의동과 건물은 그 시대를 반영합니다. 1980년대에 지어진 민주광장과 학생회관, 현대화된 과학도서관 등은 과학기술과 민주주의의 균형을 고민하던 시대의 산물입니다. 고려대학교는 시대마다 다른 외형을 가지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지성, 자율, 정의라는 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고려대 캠퍼스를 따라 걷는, 근현대사와 교육의 교차점
고려대학교를 산책하듯 걸어보면, 견학이라는 개념을 넘어 근현대사 탐방이 됩니다. 이는 안암동이라는 지역성과도 깊게 연결됩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안암동은 서울 외곽에 해당하는 한적한 곳이었으나, 고려대가 정착함으로써 이 지역은 ‘학문의 마을’로 성장하였습니다. 고려대의 발전은 지역사회의 교육 수준 향상과 청년 문화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중앙광장과 민주광장, 그리고 정경대 후문에 위치한 연덕문은 고려대가 지나온 시대를 상징하는 지점입니다. 연덕문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상징적 문이며, 민주광장은 학생운동과 사회변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열렸던 수많은 집회와 연설은 단지 정치적 행동이 아니라, 교육기관의 사회적 책무를 일깨운 장면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또한 캠퍼스를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면, 교우회관, 과학도서관, 인촌기념관 등 각종 기념시설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고려대 역사의 주요 인물과 사건들을 기리는 공간이자, 학문과 인격의 완성을 지향했던 선배 세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소입니다.
교육은 책과 강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정신, 공간, 사람의 관계가 함께 있어야 진짜 교육이 됩니다. 고려대학교의 캠퍼스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 교육사에서 유일무이한 '살아있는 교과서'입니다. 안암동 골목을 따라 이어진 담장과 골목, 카페, 서점들은 지금도 그 시간과 기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고려대학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명문 사립대학이 아닙니다. 그곳은 한국 교육의 독립정신, 자주적 학문, 민주적 가치가 건물 하나하나에 새겨진 살아있는 역사 공간입니다. 안암동이라는 지역은 그 역사의 배경이며, 고려대 캠퍼스는 그 흐름의 주인공입니다.
오늘날 교육의 방향성이 혼란스러울 때, 우리는 다시 고려대학교의 시간을 걸어야 합니다. 그 벽돌 건물에 스며든 이상과 철학을 되새기며, 미래 세대의 교육이 나아갈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단순한 대학 탐방을 넘어, 우리 모두의 기억과 책임이 깃든 장소로서 고려대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