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예천군은 ‘곤충박물관’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그 땅이 간직한 역사와 인문지리적 가치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오래되었습니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이어지는 주요 유교거점이자, 풍수지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 예천은 작은 도시가 아닌 ‘역사의 축이 흐르는 공간’입니다. 이 글에서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예천의 역사와 땅의 가치,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문화유산을 입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예천, 고려부터 조선까지 이어진 숨은 거점
예천군은 지리적으로 경북 내륙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삼국시대 이래로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해온 지역입니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복야'라 불렸으며, 군사적 기능과 더불어 유학의 기틀이 마련되던 문화적 중심지였습니다. 고려 공민왕 이후부터 조선 초기까지 이 지역은 북부 경상도의 행정 및 학문 중심지로 발전하였고, 이를 증명하는 수많은 유적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예천읍성입니다. 읍성은 조선 전기부터 만들어졌으며, 병자호란 때에는 실제로 외침을 방어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읍성의 축조 형태는 전형적인 조선 후기 방어구조를 따르며, 내부에는 향교와 관아가 공존하여 유교 행정 체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예천은 전국 유림의 구심점 중 하나였습니다. 조선 중 후기에는 ‘예천 향교’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림들이 배출되었고, 그들은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어 교육과 풍속을 이끌었습니다. 특히 예천 지역은 안동과 함께 유림 네트워크의 한 축을 형성하며 유교 문화권의 동맥이 되어 주었습니다. 현대에는 다소 주목받지 못하고 있지만, 예천은 실제로 전국 유교문화권 연구에서 빠질 수 없는 지역입니다. 이는 관광지로서 보다는 학문적 가치가 더욱 높은 지역이라는 뜻이며, 역사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깊이 있는 여정을 선사할 수 있는 장소임에 틀림없습니다.
풍수로 본 예천, 땅의 에너지가 만든 명당의 역사
예천군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땅 자체가 지닌 ‘풍수지리적 특성’에 있습니다. 풍수지리는 단지 집터나 묏자리를 보는 학문이 아니라, 도시 전체의 입지와 운명을 설명하는 고대의 환경철학입니다. 예천은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이상적인 입지 조건을 갖춘 ‘풍수 명당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회룡포’입니다. 회룡포는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며 ‘물돌이’ 형태를 이룬 곳으로, 외침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기운을 고르게 하는 형상입니다. 풍수에서는 이러한 구조를 ‘포곡형’이라 부르며, 안으로는 생기를 품고 밖으로는 외부의 기운을 막는 이상적인 터전으로 간주됩니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이 지역은 명당으로 불리며, 조선시대 많은 유학자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학문을 닦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천의 산세는 남쪽으로는 낮고 북쪽으로 높아, 전통적인 풍수의 ‘배산임수’ 조건에 매우 적합합니다. 특히 예천 읍성이 자리한 지형은 남쪽의 너른 들판과 낙동강을 배경으로 두고 있으며, 이는 고대 도시가 군사 방어와 농경을 동시에 고려하여 입지 했음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이러한 자연의 에너지는 단순히 과거의 지식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최근에는 예천의 지리적 구조와 풍수적 배치를 활용한 ‘힐링 여행지’로서의 가능성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연과 역사, 에너지를 모두 아우르는 여행지로서 예천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땅’입니다.
전통과 미래가 만나는 예천의 시간들
예천은 전통이 살아 있는 지역인 동시에, 미래를 위한 준비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이중적인 시간의 층’을 지닌 도시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예천 세계곤충엑스포’와 ‘곤충생태과학관’입니다. 단순한 자연 체험 공간이 아니라, 생태와 과학이 융합된 현대적 전시관은 예천이 ‘지나간 유산만 품고 있는 곳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또한 최근에는 디지털 문화재 복원 사업과 스마트 문화관광 시스템이 도입되며, 예천 향교와 읍성 주변을 3D 스캔 및 증강현실로 체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시범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통문화유산을 현대 기술과 융합하여 교육적, 관광적 가치 모두를 살리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과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역사 체험형 도보코스’가 조성되며, 예천군청에서는 향후 ‘유교문화 국제교류센터’를 설립해 글로벌 문화교류도 추진하고자 하는 계획을 발표하였습니다. 전통의 무게를 미래로 이끄는 방향성은, 예천이 단지 옛것을 보존하는 지역이 아니라 ‘문화를 재생산하는 중심지’가 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예천의 이러한 변화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 자리에서 공존하는 매우 드문 사례입니다. 단순히 과거의 흔적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흔적을 미래로 연결하는 여정을 경험하고 싶으시다면 예천은 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역사도시입니다.
예천은 화려한 관광지처럼 보이지 않지만, 땅의 기운, 유교의 흔적, 풍수적 구조, 그리고 현대적 문화 기술까지, 모든 것이 조용히 깊이 있게 흐르고 있는 도시입니다. 고려부터 조선까지 이어진 정신적 중심지였던 이 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배울 것과 느낄 것’이 많은 여행지입니다. 역사를 보고 듣고 체험하고 싶으시다면, 예천의 시간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