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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옛길 위 역사와 사람을 걷다 (사라진 마을,살았던 역사)

by see-sky 2025. 3. 27.

울릉도 풍경 사진
울릉도 풍경

울릉도는 바다 풍경과 오징어만 있는 섬이 아닙니다. 조선 시대 금령 정책으로 수백 년간 비워졌던 섬, 개척과 이주로 뒤덮인 돌담길,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마을들이 이 섬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글은 울릉도 옛길을 따라 걸으며 마주친 ‘사람이 머물다 간 흔적’에 대한 기록입니다. 지도에도 잘 보이지 않는 길, 무너진 담장, 닫힌 초가집 문틈 사이에서 울릉도의 역사가 말을 걸어옵니다.

입도 금지령에서 개척의 섬으로 – 울릉도의 시작을 걷다

울릉도는일반적으로 흔한 관광지가 아닙니다. 조선시대에는 ‘들어갈 수 없는 섬’이었고, 개항 이후엔 ‘들어가야만 했던 섬’이었습니다. 바로 입도 금지령(울릉도 금령 정책) 때문입니다. 조선은 울릉도에 왜구가 드나드는 것을 우려해 수백 년간 사람이 살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제한했습니다. 울릉도는 그 자체로 전략적 공간이자, 통제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1882년, 고종은 이 금령을 해제하고 개척령을 발표합니다. 이로써 울릉도는 비로소 ‘사람이 살 수 있는 섬’이 되었고, 전국 각지에서 이주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경상도, 함경도, 강원도 출신들이 많았고, 그들의 흔적은 지금도 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울릉도 저동과 도동 사이에 있는 오래된 옛길은 이주민들이 바위 사이를 깎고 쌓아 만든 ‘노동의 길’이자, ‘살기 위한 길’입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라, 역사 속 이주민들의 발자국과 마주하게 됩니다. 아무도 살지 않던 섬에 집을 짓고, 돌을 쌓아 경계를 만들고, 밭을 개간했던 이들의 노력은 거친 바위와 잔디 언덕 위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역사책에서는 한 줄로 요약된 ‘울릉도 개척령’이, 이 길에서는 구체적인 숨소리로 살아납니다.

지금은 관광객용 산책로로 조성된 구간이 많지만, 안내판 하나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오솔길에서 울릉도의 진짜 과거를 느껴보세요. 돌무더기, 작은 무명 묘지, 그리고 이끼 낀 초가의 벽돌 한 장이 울릉도의 시작을 증명합니다.

무너진 담장과 굳은 돌담, 사라진 마을의 시간

울릉도의 역사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라진 것, 무너진 것, 잊힌 것들로 가득합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은 장소는 ‘남양리 폐마을’과 ‘통구미 옛 어촌’입니다. 두 곳 모두 지금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거나, 소수의 주민만이 남아 있는 반(半) 유령 마을이 되었지만, 한때는 삶이 활발하게 흐르던 공간이었습니다.

통구미는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까지 어업과 돌산업으로 번성했으나, 해상 운송 노선의 변경과 고령화로 점차 인구가 빠져나가 현재는 폐가만이 남아 있습니다. 돌담을 따라 걷다 보면 허물어진 담장 사이로 오랜 기와 파편, 무너진 시계줄, 그리고 풍화된 문패가 눈에 들어옵니다. 마치 시간이 사람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흔적만 남긴 듯한 풍경입니다.

남양리는 더욱 극적입니다. 이곳은 울릉도의 농업 거점 마을 중 하나였으나, 태풍 피해와 교통 단절로 인해 자연스럽게 사람의 발길이 끊어졌습니다. 이 마을엔 지금도 사용되지 않는 전통 방식의 저수지, 풀로 덮인 논, 무너진 재래식 화장실 등이 남아 있어, 울릉도에서 농경과 주거가 함께 이루어졌던 시기의 실존을 증명해 줍니다.

이런 마을을 직접 걸어보는 것은 단순한 트레킹이 아닙니다. 사라진 삶의 흔적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전시관이나 영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정, 즉 ‘이곳에서 누군가는 살았다’는 울림은 역사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울릉도는 그런 울림을 돌담 하나에도 품고 있는 섬입니다.

사람이 머물던 자리를 기억하다 – 울릉도에서 마주한 ‘살았던 역사’

역사는 반드시 기념비나 유물만으로 전해지지 않습니다. 때로는 냉장고 하나, 무너진 나무 대문, 배 위에 그어진 이름 석 자가 그것을 대신합니다. 울릉도에서의 역사 여행이 특별한 이유는 바로 이런 ‘살았던 역사’가 섬 전역에 흩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울릉읍 천부항 근처에는 6.25 전쟁 이후 피란민이 정착했던 마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가 아닌 자발적 이주로 울릉도에 정착했고, 그 후손들은 지금도 어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집터를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여기까지 왔을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되는 여정은, 감성적인 동시에 매우 현실적인 역사 체험이 됩니다.

또한 울릉도의 역사박물관이나 관광센터에서 보기 어려운 ‘소규모 마을 박물관’도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북면 지역의 ‘개인 사유 박물관’에서는 이주민들이 사용했던 도구, 편지, 아이들 교과서 등이 보관되어 있으며, 실제 주민들이 직접 설명해 주는 구술사 기반의 전시가 이루어집니다. 이런 장소들은 상업화되지 않았기에 오히려 훨씬 더 진짜 역사에 가깝습니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볼거리’가 적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울릉도의 진짜 가치는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을 따라가는 데 있습니다. 울릉도 역사 여행은 기념사진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의 자취를 기억하고, 그 위를 조심스레 걷는 것입니다.

울릉도의 바람은 조용히 말을 겁니다. 이곳은 역사가 강요되지 않는 섬입니다. 관광객을 위해 새로 만든 전시관이나 콘텐츠보다, 무너진 돌담 하나, 사람 없는 집터 하나가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곳, 그것이 울릉도의 진짜 역사 여행입니다.

다음에 울릉도를 찾게 된다면, 바다만 보지 마세요. 담장 너머를 보고, 이름 없는 길을 걸어보세요. 당신은 그곳에서 누군가가 살았던 시간, 그리고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과거와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