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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을 기억하는 여행(지워진 마을,화산섬의 침묵, 순례의 길)

by see-sky 2025. 4. 4.

아름다운 제주도 석양 사진
아름다운 제주도 석양

제주 4·3 사건은  지역의  비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자, 지금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입니다. 이 글은 제주를 관광이 아닌 기억과 사유의 장소로 바라보며, 불타버린 마을들과 남겨진 침묵의 흔적들을 따라가는 역사기행입니다. 바람과 파도가 말을 아낄 때, 우리는 더 조용히 들어야 합니다.

지워진 마을과 침묵의 이름들 – 제주 4·3 사건의 시작과 배경

제주 4·3 사건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까지, 제주도 전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단지 ‘무장 반란’이나 ‘공산주의자 진압’이라는 단어로 설명될 수 없는, 국가와 주민 사이의 단절, 냉전 이념의 폭력적 투영, 사람의 목소리가 사라진 사건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단순했습니다. 1947년 3월 1일, 제9회 3·1절 기념 시위에서 경찰의 발포로 다수의 민간인이 사망한 일이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이후 1948년 5월 10일 남한 단독 선거에 반대하며 무장대가 경찰서를 습격하였고, 이 사건을 빌미로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전역을 ‘토벌’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 ‘토벌’은 무장대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제주도민 전체가 잠재적 반란자로 간주되었고, 산간 마을 대부분이 초토화되었습니다. 심지어는 ‘해안선 5km 이내로 이주하라’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이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즉결처형’ 대상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마을이 불타올랐고, 수천 명이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중 다수는 무장을 한 적도, 정치적 의식을 가진 적도 없던 일상의 주민, 어린아이, 노인, 여성들이었습니다. 한림, 애월, 조천, 중산간 마을 곳곳은 지도로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국가에 의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수십 년간 말해질 수 없는 역사로 남았습니다. 제주 4·3은 그저 “일어난 일”이 아니라, “지워진 기억”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지금도 불탄 집터와 사라진 마을 이름 속에 묻혀 있습니다.

화산섬의 침묵, 기억을 위한 여행이 시작되는 곳들

오늘날 제주도를 찾는 많은 분들께서는 주로 바다, 오름, 카페, 자연을 즐기기 위해 방문하십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아래는 기억의 침묵과 지워진 목소리들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4·3 사건의 흔적은 단지 위령비나 위령탑에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시 살지 못한 마을 터, 복원되지 않은 분묘, 침묵하는 오름 곳곳에 퍼져 있습니다.

이 여행의 여정은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시작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관이 아닌, 국가폭력의 기록을 직시하고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한 공식 공간입니다. 공원 내 위령제단, 기념관, 유해발굴실, 그리고 평화탑은 모두 조용하고 단단하게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날,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이후에는 낙선동, 곤을동, 북촌리, 대정읍 신도리, 정방폭포 뒤편의 유적지 등을 차례로 둘러보시면 좋습니다. 예컨대 북촌리는 단일 마을에서만 300명 이상이 학살당했던 참극의 현장입니다. 지금도 마을 어귀에는 무연고 묘, 사라진 우물터, 복원된 담장이 남아 있어 역사적 무거움을 고요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곽지과물해변 인근에는 당시 주민들이 숨었다가 끝내 발각되어 학살된 동굴이 있고, 송당 오름 일대는 무장대와 군경이 가장 격렬히 대치한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의 특이점은 자연이 복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은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여행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무거워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묵직한 여정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존엄의 감정'이 분명 존재합니다. 그것은 단지 희생자를 애도하는 감정이 아니라, 기억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 우리 자신의 책임감입니다.

잊지 않기 위한 걷기, 여행이 아닌 기억의 순례로

제주 4·3 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과거 되짚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국가, 공동체의 윤리를 점검하는 일입니다. 이 사건은 단지 한 지역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란 무엇이며, 권력이 무엇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보편적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제주 4·3은 수만 명이 죽은 사건이면서도, 수십 년간 교과서에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았던 사건입니다. 살아남은 유족들은 ‘빨갱이 가족’이라는 낙인을 감당해야 했고, 피해자임에도 ‘침묵해야만 하는 존재’로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침묵을 깨뜨리는 가장 조용하면서도 강한 방식은 바로 걷기입니다. 우리가 다시 걷고, 다시 바라보고, 질문을 던지고, 이름을 불러주는 그 행위는 국가가 외면한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입니다.

제주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는 이름 없는 묘비, 반쯤 무너진 돌담, 마을에 남겨진 노인의 입속에서 흘러나오는 구술의 흔적들은 우리에게 “기억하라”라고 속삭입니다. 그 기억은 비판이 아니라 존엄의 복원,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니 이 여행은 단순한 역사여행이 아니라 기억의 순례이며, 우리가 이 섬에서 가져갈 가장 소중한 기념품은 사진도, 간식도 아닌, 함께 짊어지는 역사적 책임감일 것입니다.

제주는 바다와 돌, 바람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섬입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는 말할 수 없어 더 깊은 상처, 이름조차 지워진 마을들, 수많은 영정 없는 위령묘, 그리고 그럼에도 살아남아 끝끝내 기억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이 섬을 관광도시로서 관광만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잊지 않기 위해 걷는 여행, 불타버린 마을과 침묵의 역사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 시간, 그것이 제주 4·3을 기억하는 진짜 여행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