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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에 쌓인 원주의 시간 (한지문화, 고려유산, 철도와 기록관)

by see-sky 2025. 7. 29.

원주 한지 사진
원주 한지

강원도의 중심도시 원주는  한지를 비롯한 전통공예의 중심지이자 고려부터 조선,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행정, 기록, 산업 유산이 살아 숨 쉬는 ‘기록의 도시’입니다. 이 글에서는 원주의 고유문화유산 중 특히 종이와 기록, 행정 중심 도시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한지 생활사, 고려~조선의 감영문화, 근대기록 및 공간의 변화까지 폭넓게 살펴보겠습니다.

한지로 이어온 원주의 생활사와 정신문화

한지는 흔한 종이가 아닙니다. 조선왕조의 문서를 기록하던 종이이자 불교 경전을 필사하던 신성한 매체이며, 서민들의 일상 속 장롱, 문풍지, 책의 재료로도 쓰였습니다. 그 중심에 바로 강원도 원주가 있습니다. 원주는 한지의 대표 생산지로, 질 좋은 닥나무와 맑은 물, 서늘한 기후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어 예부터 최고급 한지를 제작해 왔습니다. ‘원주한지’는 단단하고 매끄러우며, 시간이 지나도 쉽게 훼손되지 않는 특성이 있어 조선시대 국왕의 어면서, 의궤, 승정원일기 등 국가기록물의 재료로 활용되었습니다. 원주의 한지는 품질과 내구성이 뛰어나 UNESCO 세계기록유산 복원 사업에도 사용되고 있을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원주의 한지 전통은 단절되지 않고 ‘원주한지문화제’를 통해 그 맥을 잇고 있습니다. 해마다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전통 한지 뜨기 체험, 한지 공예 작품 전시, 한지 복식 패션쇼 등 한지를 소재로 한 다채로운 콘텐츠가 펼쳐집니다. 이는 단순한 관광을 넘어, 한지가 지닌 정신성과 전통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문화유산 계승의 현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원주는 국내 유일의 ‘한지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는 도시입니다. 이곳에서는 전통 방식의 한지 제작 공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지가 생활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어 왔는지를 교육적으로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원주 한지는 단지 '종이'가 아닌, 세대를 이어온 삶과 기록의 매개체이며,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지역 정체성과 문화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축이 되고 있습니다.

고려~조선을 관통한 감영지 원주의 역할과 유산

원주는 조선시대 강원도의 정치·행정 중심지였습니다. 고려시대 이래로 전략적 요충지로 기능했으며, 조선시대에는 강원감영이 위치한 '감영 도시'로서 지방 행정을 총괄하는 핵심지역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강원감영은 단순한 관청이 아니라 조선의 지방정치, 문서행정, 법률 집행 등 다양한 행정 기능이 융합된 복합 시스템의 중심이었습니다. 현재 복원된 원주 강원감영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조선시대 감영 건축물로, 원주의 역사적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감영은 영서 지방 전체를 통치하던 강원감사가 근무하던 장소로, 선화당, 포정루, 집사청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 조선 후기 행정 건축의 전형을 잘 보여줍니다. 이 지역에는 감영 주변으로 옛 지명과 골목들이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무실동'이라는 지역명은 무기고에서 유래하였고, '단구동'은 단청 공방이 있던 곳으로 전해집니다. 감영 중심으로 발전한 도시의 물리적 구조는 곧 조선시대 원주의 정치 지도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또한 원주는 고려 후기에 불교의 중심지이기도 했습니다. 원주 법천사지는 국보 제101호 철불좌상을 보유한 사찰터로, 그 규모나 건축 양식에서 고려 중기의 불교 건축 특성이 잘 드러납니다. 이렇듯 원주는 고려의 종교도시, 조선의 행정도시라는 이중적 정체성을 간직한 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산들은 원주의 역사 속 위상을 단순한 지방 중소도시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줍니다. 오늘날 복원되고 있는 감영지와 고려 유적은 과거의 원주가 어떤 도시였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들입니다.

철도와 기록관, 근대기록도시로서의 원주의 진화

원주의 역사는 근현대로 오면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교통과 산업의 요충지로 지정되며 원주역이 설치되고, 의료·교육기관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근대 도시 원주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는 원주가 ‘기록 도시’로서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현재 원주에는 국가기록원 원주기록관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관은 행정안전부 산하의 국가 공식 기록보관소로, 각종 공공문서, 행정기록, 근대 생활사 기록물 등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이 기록관은 단순한 보관소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기록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열린 공간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주 고문서관’에서는 사대부 가문이나 향교에서 보관하던 고문서를 수집·보존하고 있으며, 고문서 해독 및 교육, 디지털화 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이는 지역 주민이 직접 역사기록을 관리하고, 전통을 계승하는 선진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철도 또한 원주의 기록성과 연결된 중요한 자산입니다. 원주역은 1940년 경춘선과 태백선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지점으로 활용되었으며, 이후 원주가 의료·군사·산업도시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최근 복원된 옛 원주역 주변은 ‘문화의 거리’로 재탄생하면서 도시 재생의 모범사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원주는 단순히 역사적 유산을 가진 도시를 넘어서, 기록과 보존, 계승이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선도 도시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과거의 종이문화와 감영기록이 오늘날의 디지털 기록 보관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원주의 정체성이 ‘기록도시’로 진화했음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원주는 일반적인 내륙 도시가 아닙니다. 한지를 통해 삶을 기록하고, 감영을 통해 나라를 다스리며, 철도와 기록관으로 미래를 보존하는 ‘시간을 엮는 도시’입니다. 종이에서 시작해 감영, 철도, 기록관으로 이어지는 도시적 흐름은 국내 그 어떤 도시와도 비교되지 않는 독특한 문화유산의 궤적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말, 관광지를 넘어 사유의 여정이 있는 도시 원주로 여행을 떠나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종이 위에 쌓인 그 도시의 시간은 여러분께 깊은 감동을 안겨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