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의 작은 섬 소록도는 오늘날 '치유의 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그 역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소록도는 단지 병을 치료하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로 분리·격리되었고, 식민지 통치 체제가 실험되던 통제의 공간이자, 지금까지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인권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장소입니다. 이 글에서는 소록도의 양면성, 즉 ‘치료’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통제와 차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우리가 아직도 잘 모르는 소록도의 진실을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치료의 이름으로 시작된 강제 – 소록도는 어떻게 통제의 섬이 되었나
소록도는 1916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소록도 자혜의원'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개원하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시설이었지만, 실상은 격리와 통제를 목적으로 설계된 식민지 병원이었습니다. 이곳에 수용된 환자들은 자의로 온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경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어 왔습니다. 병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이 박탈된 이들은, 철조망 안에서 자유로운 외출은 물론 가족과의 면회조차 허락받지 못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소록도를 통해 ‘질병 통제와 국민 위생’이라는 이름 아래, 조선인의 신체와 이동을 통제하는 모델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소록도병원 내부는 감옥처럼 설계되었고, 병동마다 감시원이 배치되었으며, 정기적인 규율 교육과 제식 훈련이 이루어졌습니다. 환자들은 매일 아침 조회에 참여해야 했고, 조선총독부가 정한 노래와 구호를 외워야 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명백한 '의료 통치'의 실험장이었으며, 의료는 치료의 수단이기보다 복종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강제 단종(불임 수술)과 비인간적 해부 실습이 이뤄졌다는 기록입니다. 한센병이 유전병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졌음에도, 식민당국은 환자의 자녀가 태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성 환자에게는 불임 수술을, 남성 환자에게는 고환 적출을 강요하거나, 동의 없이 시술하였습니다. 이러한 의료 폭력은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으며, 피해자 중 다수는 지금까지도 이름조차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소록도는 ‘치료의 섬’이라기보다, ‘통제와 침묵의 실험장’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 역사는 단지 과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리 사회가 질병과 다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가를 비추는 거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소록도를 모른다 – 인식의 공백과 기억의 단절
현대 사회에서 소록도는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치유의 섬’으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인식 속에는 과거의 상처와 구조적 차별에 대한 기억의 공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많은 관광객들이 소록도를 찾지만, 이곳에 한센병 환자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조건에서 병원 생활을 해왔는지를 제대로 알고 찾는 경우는 드뭅니다.
소록도에는 아직도 이름이 없는 묘지들이 많습니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묻힌 사람조차 누구인지 모르는 무연고자 무덤이 병원 언덕 뒤편에 줄지어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일본 제국주의 시절 의료 실험에 사용되었거나, 병사가 아닌 ‘관리 실패’로 인해 생을 마감한 이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묘역은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으며, 대부분의 방문객은 이 존재조차 모른 채 소록도를 떠나곤 합니다.
또한, 소록도 주민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1990년대까지도 한센병 치유자들이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거부당한 사례가 많았고, 결혼, 취업, 심지어는 대중교통 이용에도 제약을 겪었다는 증언이 다수 존재합니다. 그들은 ‘낫지 않은 병’이라는 낙인 속에서 이중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단지 소록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질병을 대하는 방식,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 그리고 공공의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포기하게 만드는 가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소록도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단지 병원 역사나 의료 기록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침묵했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고 기억해 주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입니다.
기억을 되묻다 – 소록도를 걷는 오늘의 이유
2020년 이후, 소록도는 관광형 힐링 섬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걷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이 섬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있는가. 그리고 이 공간을 ‘치유의 장소’로 소비하는 행위가 과거의 고통을 외면하는 방식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소록도병원은 지금도 운영 중이며, 현재에도 수십 명의 한센 치유자들이 병원 내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그분들 중 일부는 1950년대, 60년대 강제 격리 당시 입소한 분들이며, 평생을 철조망 안에서 보내셨습니다. 병은 완치되었지만, 사회는 그분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병보다 더 아픈 것은 외부의 시선과 고립감이었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이제 우리는 소록도를 단지 과거의 상처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기억의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라는 물음을 마주해야 합니다. 기록되지 않은 이름, 설명되지 않은 묘지,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것이 바로 소록도의 진짜 역사입니다. 여행자 여러분께서 소록도를 방문하시게 된다면, 사진보다 먼저 마음을 여시고, 이 섬이 품고 있는 말 없는 목소리에 잠시 귀 기울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치료였을까요, 통제였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답은 우리가 소록도를 얼마나 깊이, 그리고 정직하게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