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은 단순히 남해의 아름다운 항구 도시로만 기억되기엔 너무나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 수군의 본영이자, 수많은 예술가와 문인이 거쳐간 도시이며, 그 역사는 군사 기록이나 고지도보다 오히려 바다 냄새가 밴 음식, 골목을 따라 흐른 예술의 흔적 속에 더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오늘 이 글에서는 통영을 구성한 가장 오래된 두 축, ‘바다’와 ‘한 접시’를 중심으로 조선의 유산이 어떻게 이 도시에 남아 있고, 오늘날 여행자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함께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군영에서 식탁으로 – 조선의 수군이 남긴 밥상의 흔적
통영은 ‘통제영(統制營)’에서 그 지명이 비롯된 도시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수군을 총괄하는 삼도수군통제사가 머무른 본영으로, 이순신 장군 이후 해군 재건의 핵심 거점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통영은 전략적인 항만 기능뿐 아니라, 군사 행정, 조선(造船), 보급, 통신 등 모든 해상 운용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능은 도시의 식문화와 일상에도 깊은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충무김밥입니다. 오늘날은 간편한 분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 음식은 원래 통제영의 해군들이 멀리 출항할 때 김밥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밥과 반찬을 따로 포장해 먹던 해상 보존식에서 유래했습니다. 밥은 뭉쳐서 들고 다니기 좋도록 작게 말고, 반찬은 무침 형태로 양념해 따로 싸니, 위생과 저장성 모두를 만족하는 군식이 된 것입니다. 이 구조는 오늘날에도 충무김밥 특유의 ‘밥 + 무침 + 오징어’ 분리 구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또한, 통영의 다찌 문화도 군영에서 비롯된 접대 식사에서 발전했습니다. 통제영의 문신과 무관들이 접견 손님을 맞이할 때, 술과 안주를 나누는 자리에서 ‘회, 전, 조림, 구이’가 일정한 순서로 나오는 전통식 코스가 만들어졌고, 이는 훗날 ‘다찌집’이라는 독특한 식문화로 남게 되었습니다. 다찌는 흔한 주점이 아니라, 군정과 문화를 나누던 ‘좌석 위의 정치 공간’이었습니다.
이처럼 통영의 밥상은 단순히 지역 음식을 넘어, 조선 수군이 남긴 군사적, 행정적, 문화적 유산이 그대로 식문화로 스며든 역사적 결과물입니다. 한 접시의 밥에 담긴 바다의 전략, 육지의 지혜, 그리고 사람들의 생존 방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통영이라는 도시가 가진 입체적인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해안이 만든 도시, 군사도시 통영의 숨은 흔적을 따라
통영의 역사는 바다에서 시작되었고, 그 바다는 곧 조선의 국방이었습니다. 1593년, 한산도에 있던 수군 본영은 전란 이후 통영으로 옮겨졌고, 이후 300년간 ‘삼도수군통제영’으로서 조선 해군의 심장이었습니다. 현재의 통영 중앙동 일대는 그 당시 군영 본부가 있던 자리로, 지금도 ‘통제영 거리’, ‘세병관(洗兵館)’, ‘충렬사’ 등 군사유산들이 도시 공간에 박혀 있습니다.
세병관은 조선시대 수군의 무기를 씻고 정비하던 공간으로, 일종의 해군 정비창 역할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의미는, 세병관이 단순한 군사 건물을 넘어 국왕이 하사한 명을 수행하는 장관급의 의전 장소이자, 바다 위 의회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세병관의 마루에 앉으면, 남해의 바다 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며, 그 위에 펼쳐지는 한산도의 모습은 당대 수군이 어떤 시선으로 바다를 지켰는지를 상상하게 만듭니다.
또한 통영의 골목 곳곳에는 군영의 잔재가 흔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통영 동피랑’은 지금은 벽화 마을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병사들이 거주하던 군영의 동쪽 생활지구였고, 지금의 ‘서호시장’은 물자 보급과 군수품 거래가 이뤄지던 중심 장터였습니다. ‘배꽃 골목’, ‘깃발 바위’ 등은 전쟁과 의전, 수호신앙이 함께 얽힌 지명으로, 당시 사람들의 전쟁과 생존, 신념이 어떻게 도시 공간 속에 새겨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처럼 통영은 일반적인 항구 도시가 아니라, 조선의 군사 시스템이 도시 전체를 조직하고 설계한 대표적인 ‘군영 도시’였습니다. 그 구조는 지금도 시장, 골목, 해안선, 건축 배치에 생생히 남아 있으며, 도보 여행만으로도 조선의 전략적 지혜와 시민들의 생활 구조를 동시에 체험하실 수 있는 역사 여행지입니다.
음식과 풍경 사이에 남은 예술 – 통영이 보여주는 ‘살아 있는 유산’
통영은 ‘한국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 풍경은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을 일으킨 공간적 배경이었습니다. 조선 후기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통영은 수많은 예술가들의 고향이자 유배지였고, 그들이 남긴 감각과 문장이 지금의 통영을 '예술의 도시'로 만든 뿌리가 되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유배 문학이 그렇습니다. 통영과 그 인근 한산도, 욕지도, 사량도 등에는 유배된 문신과 예술가들이 많이 머물렀으며, 그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남긴 시와 문장은 지금도 문집과 마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또한, 통영은 12 공방 전통을 통해 대목장, 나전장, 악기장 등의 기능인을 양성해 왕실과 군영의 문화적 장식을 담당하였고, 이는 현대에도 통영 나전칠기, 자개 공예 등으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음식과 예술이 만나는 장면도 통영만의 특징입니다. ‘다찌’라는 음식 문화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술과 시, 담론과 음악이 함께 이루어지던 통영식 살롱 문화였습니다.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 통영예술제, 남망산 예술길, 김춘수문학관, 윤이상기념관 등으로 발전하며, 한 도시가 가진 예술성과 역사성을 자연스럽게 잇고 있습니다.
즉, 통영의 예술은 전시관 속 작품보다 골목의 바람, 접시의 무늬, 항구의 빛속에 살아 있습니다. 여행자 여러분께서 통영을 찾으시게 된다면, 한 접시의 음식을 통해 그 안에 담긴 바다의 전략, 사람의 눈물, 장인의 손끝을 함께 느껴보시길 진심으로 권해드립니다.
통영은 조선의 바다 위 군영이었고, 지금은 예술과 맛, 기록이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그 이름을 따라 걷는 길 위에는 지금도 한 접시의 조선, 한 줄기의 바람, 한 장의 시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 통영을 걷는다는 것은, 조선이 우리에게 남긴 감각과 기록을 천천히 되새기는 역사 여행 그 자체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