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구룡포는 많은 분들께 '일본인 가옥거리'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 공간이 사진 명소나 이색 거리로만 지되기에는 너무도 깊은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붉은 지붕 아래 남아 있는 식민의 흔적과, 그 속에서 살아가셨던 조선인들의 삶과 저항을 함께 들여다보며, 여행자가 놓치기 쉬운 구룡포의 '시간'을 함께 걸어보려 합니다. 구룡포는 단순한 어촌이 아닌, 20세기 한반도와 일본의 역사가 겹쳐진 현장입니다.
대마도보다 가까운 일본, 구룡포에 남은 식민의 거리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일본은 조선 전역에 다양한 식민 거점을 세웠습니다. 그중에서도 포항 구룡포는 전략적 어항이자 군수물자 수송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일본과 가장 가까운 해안에 위치한 이곳에는 1910년대부터 대마도와 규슈 지역 어부들이 집단적으로 이주해 오기 시작하였으며, 구룡포는 빠르게 ‘일본인 거주구’로 변모하였습니다. 현재도 남아 있는 붉은 기와의 일본식 가옥들은 그 시절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살아 있는 유물입니다.
이 거리에는 관광객들이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식민지의 흔적’이 숨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중간에 위치한 한 가옥의 목조 기둥에는 ‘대정 13년(1924년)’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대정은 일본 연호 체계로, 조선이 일제의 지배를 받던 시기입니다. 또한 이 가옥의 벽면 안쪽에는 당시 일본인들이 사용하던 향로, 명패, 종교 용품 등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으며, 일본식 교리판까지 남아 있어 이곳이 단순한 민가가 아닌 ‘종교적 식민 통치’의 일환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해집니다.
구룡포는 단지 해산물의 집산지였던 것이 아닙니다. 이곳은 일본의 식민 경제가 가장 먼저 실험된 현장이었고, 일본은 조선의 바다를 '어획 산업'으로 조직화하면서, 자신들의 생활양식까지 구룡포에 이식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이곳은 '대마도보다 더 가까운 일본'이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붉은 기와는 단순한 디자인이 아니라, 권력과 통제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인의 마당과 일본인의 복도 – 구룡포의 공간에 숨은 권력
구룡포에 남아 있는 일본식 가옥들은 일반적인 주택과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공간 배치입니다. 일본 가옥은 좁은 복도와 닫힌 구조를 특징으로 하며, 이는 개인 공간을 중시하는 일본 문화의 영향이자, 식민지 주민과의 거리 두기 목적이 반영된 설계이기도 합니다. 반면, 구룡포에 살던 조선인들의 집은 마당이 중심이며, 이웃과의 교류를 중시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거리, 다른 집. 이 차이는 곧 삶의 방식뿐 아니라 지배와 저항의 공간 구조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인 거주 구역은 행정적으로도 별도로 관리되었습니다. 일본인 자녀를 위한 전용 소학교가 있었고, 경찰서, 목욕탕, 도서관도 모두 일본인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조선인 주민들은 이곳에서 상업 활동은 할 수 있었지만, 주거 이전은 철저히 제한받았습니다. 이러한 배제 속에서도 조선인들은 구룡포의 시장 골목을 중심으로 작게나마 저항의 공동체를 형성하였습니다. 구전되는 이야기 중에는, 일본 경찰을 피해 몰래 회합을 열고 독립 선언문을 돌리던 청년들이 있었다는 증언도 남아 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일본인가옥거리 주변에는 실제 조선인들이 살았던 좁은 골목이 몇 곳 남아 있습니다. 담장이 낮고, 문간에 마루가 있는 그 집들은 화려하진 않지만 정이 있고 따뜻합니다. 이 공간을 함께 들여다보시면, 겉으로 보이는 일본식 거리의 이면에 조선인들의 살아 있는 역사가 어떻게 병존했는지를 체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란 단지 건물의 양식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의 삶과 고통, 그리고 기억임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잊힌 풍경과 사라진 목소리 – 구룡포가 들려주는 마지막 수업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를 걷다 보면, 일부 공간은 복원되어 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집들이 폐가 상태로 남아 있고, 일부는 민가로 실제 거주 중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 골목 어귀에서는, 그 시절을 기억하시는 어르신들을 종종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저 집에 일본 순사 가족이 살았지요.” “이 골목으로 야간 통행금지가 시작됐어요.”와 같은 생생한 목소리는 박물관에 적힌 설명보다 더 진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또한 구룡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감시초소' 터도 존재합니다. 1940년대 후반, 냉전의 기운이 감돌던 시절 이곳 해안에는 일본군과 미군이 사용하던 간이 감시소가 설치되었으며, 구룡포 주민들은 이 장소를 ‘망루’라 불렀습니다. 현재는 그 구조물의 흔적만 남아 있지만, 바닷가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구룡포의 전경은 당시 얼마나 이곳이 전략적 요충 지였는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그리고 하나 더, 구룡포에는 한때 '해녀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 경남과 제주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어촌 남성 중심의 구조에서 소외된 채,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셨습니다. 이 여성들은 종종 일본인 상점가에서 차별을 겪었지만, 끝내 구룡포 어시장의 일부분을 주도하게 되었고, 지금도 그 흔적은 시장 뒤편 골목의 작은 비석과 명패에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 구룡포는 단순한 일본식 거리로 소비되기엔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붉은 기와 아래에는 일본과 조선, 지배와 저항, 남성과 여성, 관과 민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지금도 그 골목에서, 조용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습니다. 여행자 여러분께서도 그 길을 걸으시며, 잊힌 목소리와 마주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진정한 역사 여행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