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해와 달을 만든 두 사람 이야기: 중년을 위한 고요한 설화기행, 연오랑 세오녀를 따라 (포항, 삼국유사, 동해문화)

by see-sky 2025. 5. 24.

연오랑세오녀 공원
연오랑 세오녀 공원

신화는  옛이야기가 아닙니다. 특히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는 신라 시대 바닷길을 배경으로, 해와 달, 그리고 나라의 운명을 상징하는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경북 포항에 남겨진 연오랑세오녀 유적지와 관련 설화 코스를 중심으로, 단순한 여행이 아닌 중년의 감성과 교양을 위한 고요한 인문기행을 소개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은 해와 달을 만든 부부의 이야기를 따라, 우리의 삶과 가족, 신앙,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설화 속을 걷다: 바다를 건넌 부부, 연오랑과 세오녀

삼국유사에 기록된 연오랑과 세오녀는 신라 초기에 실존했던 인물로 전해집니다. 어부였던 연오랑이 바위 위에서 낚시를 하다, 신비로운 빛에 휩쓸려 일본으로 건너가 황제로 추대되었다는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 뒤를 따라 세오녀가 실을 짜며 바닷길을 건너가 함께 황후가 되었다는 설화는 그 자체로도 판타지이지만, 해와 달의 상징으로까지 확장됩니다.

신라에 해와 달이 사라진 후, 왕이 제사를 지내니 하늘에서 “해는 연오랑에게, 달은 세오녀에게 있다”라고 했고, 그들이 보낸 천(天)을 제단에 바치자 해와 달이 다시 떠올랐다는 이야기. 이는 한 나라의 질서와 광명이 부부의 헌신으로 돌아왔다는 상징으로도 해석됩니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에 위치한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은 이 설화를 바탕으로 꾸며진 공간으로, 아담한 바닷가 절벽과 조형물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한적한 바닷바람과 함께 걷는 이 길은, 한 편의 설화를 직접 발로 걷는 기분을 선사합니다.

연오랑세오녀 유적지에서 느끼는 잔잔한 감동

연오랑세오녀 설화의 중심 무대가 되는 곳은 포항의 동해면에 위치한 동해안 일대입니다. 이곳에는 연오랑세오녀 상징탑, 제단, 설화 전시관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경주나 서울 같은 대도시 유적지와는 다른, 한적하고 고요한 느낌이 깊게 흐르는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특별한 점은 무엇보다도 '관광지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연에 파묻혀 있고, 설명은 간결하며, 방문객도 적은 편이라 조용히 걷고 사색하기에 최적화된 장소입니다. 중년의 방문객에게는 '혼잡하지 않은 고요한 인문기행'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설화전시관에서는 삼국유사 원문 일부와 함께, 해와 달이 사라진 배경과 복귀 과정의 상징성, 바다를 건넌 행위의 정치적 해석 등 연오랑세오녀 설화에 대한 다양한 학문적 해석이 전시돼 있습니다.

연오랑세오녀 이야기로 다시 보는 나와 우리의 관계

중년이라는 시간은 삶의 절반을 돌아보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이 시점에서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면, 그 속에는 단순한 설화 이상의 깊은 인간관계와 정서의 구조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연오랑은 바다를 건넜지만, 그 여정이 본인의 선택이었는지, 혹은 운명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세오녀는 실을 짜며 그를 기다리고, 뒤늦게 바다를 건너 같은 곳에서 함께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러브스토리를 넘어, 신뢰와 인내, 선택의 용기, 그리고 결국 '함께 있음'이 주는 구조적 아름다움을 전합니다.

여행은 공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따라 걷는 이 기행은, 조용히 그들의 길을 따라 나의 길을 다시 생각해보게 합니다. 그 길 위에 파도 소리가 잦아들고, 마음의 고요가 찾아올 때, 비로소 여행은 끝나고 ‘이야기가 남는 시간’이 시작됩니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 이야기. 그 설화는 사실, 우리 안의 빛을 다시 찾는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함께 걷고, 서로를 바라보고, 기억할 때 그 빛은 멀리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 안에, 내 안에 깃들 수 있습니다. 이번 주말, 포항의 바다를 따라 조용한 설화기행을 떠나보세요. 말보다 여운이 긴 여행, 연오랑과 세오녀처럼 서로의 빛이 되어주는 시간을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