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흑산도의 바닷가에 앉아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펼치면, 파도 소리보다 더 깊은 물소리가 가슴에 스며듭니다. 이 글은 단순한 역사기행이나 여행 콘텐츠가 아닙니다. 책을 사랑하는 중년의 시선에서 바라본 ‘자산어보의 바다’와, 정약전이 흑산도에서 남긴 인간과 자연, 그리고 기록에 대한 성찰을 따라갑니다. 200년 전 흑산도 유배지에서 기록된 자산어보는 단순한 어류백과가 아닙니다. 이 글은 그 어보에 담긴 마음을 해석하고, 중년의 독자분들이 이 시대에 다시금 자산어보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되새겨보는 여정입니다.
흑산도의 파도 위에서 읽는 자산어보
흑산도는 일반적인 외딴섬이 아닙니다. 고립과 유배, 자연과 생존, 기록과 사색이 오롯이 녹아 있는 공간입니다. 정약전이 1801년 이곳에 유배된 이후 18년간 머물며 작성한 『자산어보』는, 단순한 어류 도감이 아닌 ‘인문학적 생물기록’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는 물고기의 형태나 생태만을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 물고기가 어디에서 잡히고, 어떻게 요리되며, 어느 계절에 가장 맛이 있는지까지 서술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으로 치면 민중 생태학이자 구술 민속학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흑산도의 바닷가는 중년의 여행자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속도 중심의 여행에서 벗어나, 조용히 서책을 펴고 파도 소리를 듣는 순간. 자산어보는 단순히 옛 글이 아니라, 지금 내 삶의 속도와 질문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됩니다. 특히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중년 블로거나 독서가들에게는, 이 기록의 태도가 많은 영감을 줍니다. 정약전은 당시 조선 사회에서 주변부 인물이었던 어부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말을 받아 적습니다. 글과 기록은 권력의 도구가 아닌, 이해와 공감의 도구였던 셈입니다. 이 자세는 현대의 콘텐츠 제작자, 특히 블로거들에게도 큰 적을 거리를 제공합니다.. 콘텐츠란 정보 전달이 아니라, 시대와 삶을 읽어내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중년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기록’이라는 행위
우리는 중년에 접어들며 기록의 무게를 알게 됩니다. 순간의 감정이나 정보가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에도 남는 ‘지속 가능한 기록’을 꿈꾸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정약전의 자산어보는 매우 상징적인 텍스트입니다. 그는 유배라는 불안정한 삶 속에서 ‘쓸모 있는 기록’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중앙 정계에서 멀어졌지만, 그는 섬사람들과 삶을 나누며 그들의 언어와 감각을 종이에 옮겼습니다. 이건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존중의 언어’입니다. 중년의 블로거나 작가, 혹은 인문적 사고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자산어보를 다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는 단순히 생선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왜 지금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블로그 콘텐츠가 정보성에만 치우쳐 있다면, 자산어보는 진정성의 가능성을 제시해 줍니다. 정약전은 유명한 어류학자도, 과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저 ‘알고 싶고, 남기고 싶어서’ 적은 것입니다. 바로 이 태도가 현대의 기록자에게 필요한 시선입니다. 특히 인생의 절반을 지나며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에, 이 책은 독서 이상의 울림을 줍니다. 흑산도라는 공간은 단절의 장소이자 연결의 장소였습니다. 정약전은 그곳에서 세상과 끊긴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년의 기록자도 그저 조용히 연결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블로그든, 책이든, 혹은 일기장이든.
자산어보가 지금 우리에게 들려주는 바다의 철학
자산어보는 바다를 사랑한 한 유배인의 철학서입니다. 정약전은 그곳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가 아닌, ‘공존과 관찰의 윤리’를 실천합니다. 그는 바다의 생명체를 함부로 규정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민물고기, 조개류, 해조류, 해양동물까지도 하나하나 관찰하고 기록하며, 그 지역민들의 표현까지 반영합니다. 단어 하나에도 세심하게 현지의 언어를 담으려 애쓴 그의 태도는, 현대의 문화 기록자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줍니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면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친 것들’에 대해 아쉬움이 커지기 마련입니다. 자산어보는 바로 그 순간에 다시 손에 들기에 딱 좋은 책입니다. 단지 물고기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하지 못한 타인을 이해하려는 자세’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산어보는 단절이 아닌 연속의 텍스트입니다. 그는 그 기록을 단절된 시대 속에서도 미래의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200년 뒤에 그 텍스트를 손에 들고 감동받고 있습니다. 이는 블로그를 비롯한 온라인 콘텐츠와도 맥을 같이합니다. 지금은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그 기록은 누군가에게는 미래의 자산이 될 수 있습니다. 흑산도의 바다를 바라보며 이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더 이상 관광객이 아니라 ‘관찰자’가 됩니다. 해안가 바위에 걸터앉아 자산어보의 구절을 되새기며, 인간과 자연, 기록과 관계의 철학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바다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자산어보는 그 바다를 읽는 또 하나의 눈입니다.
흑산도에서 만난 자산어보는 단지 과거의 유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중년의 기록자에게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적어야 할지에 대한 안내서입니다. 조용하고 멀어진 것 같지만, 오히려 더 깊이 연결되는 바다처럼. 정약전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다시 기록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감각이 둔해졌다고 느낀다면, 자산어보를 펼쳐보십시오. 흑산도의 파도 소리와 함께 ‘기록의 감각’이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