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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길 의성의 역사기행(고대의 경계,의성향교, 민초의 삶)

by see-sky 2025. 5. 25.

의성향교 사진
ㄱ대의 경계의성향교

경상북도 의성은  마늘로만 기억되기엔 아쉬운 도시입니다. 이 작은 군(郡)에는 고대 삼국의 경계, 조선의 유교문화, 독립운동의 흔적, 민초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조용하고 따뜻한 흙길을 따라 걷는 감성적인 역사기행을 통해 의성이 지닌 깊은 이야기들을 가족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3가지 장소 중심으로 소개드리겠습니다. 유명 관광지는 아니지만, 아이들과 부모님 세대가 함께 걷기에 더없이 좋은 교육적이고 의미 깊은 공간입니다.

의성 탑리리 오 층 석탑과 조문국 박물관: 삼국이 교차하던 고대의 경계

의성 역사기행의 첫걸음은 고대의 문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탑리리 오 층 석탑과 조문국 박물관입니다. 탑리리 오 층 석탑은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석탑으로, 고려와 신라의 건축기법이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특징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의성이 삼국시대 ‘경계의 땅’이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입니다.

조문국은 삼국사기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삼국유사와 지역 전승을 통해 존재가 확인된 고대 왕국입니다. 조문국 박물관은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지역문화 시설이지만, 전시 수준이 높고 설명이 잘 구성되어 있어 아이들의 역사교육 장소로 최적입니다. 고분에서 출토된 철기, 토기, 금속공예품 등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아이들에게 “우리 동네에도 이렇게 오래된 나라가 있었어?”라는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줄 수 있는 장치입니다.

이 구간은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 좋습니다. 부모님 세대에게는 삼국의 역사를 다시 보는 인문기행이 되고, 아이들에게는 한국사 입문을 현실 공간에서 체험하는 기회가 됩니다. 흙길로 연결된 탑과 박물관 사이를 걸으면서, 역사를 책이 아닌 발로 배우는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빛바랜 향교에서 배우는 유교의 본모습: 의성향교

두 번째 목적지는 의성향교입니다. 조선시대 의성 지역의 유학 교육과 유림 문화를 책임졌던 이 향교는, 크게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정갈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가르침’의 본질을 되새기게 하는 공간입니다.

의성향교는 조선 태종 때 창건되었으며,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로 구성된 전형적인 향교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찾는다면, 단순히 “여기서 공부했대” 하는 설명을 넘어, 조선시대 교육이 어떻게 이뤄졌고, 유학이 왜 중요한 가치였는지를 풀어낼 수 있는 현장 교재가 됩니다.

특히 대성전 앞에 서서, 공자와 그 제자들에게 예를 표하는 재현 행사를 아이들과 함께 상상해 보면,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교육이 됩니다. 또한 향교 주변에는 고목과 흙담장이 있어, 산책만으로도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에게는 학창 시절 도덕과 윤리 교과서에서만 보던 유교정신을 실제 공간에서 되새기는 기회가 되고, 아이들에게는 “이런 데서 진짜 수업했대!” 하는 호기심이 유발됩니다. 조용한 여행지를 찾는 가족에게 의성향교는 '배움'과 '쉼'이 공존하는 추천 공간입니다.

민초의 삶과 독립운동이 숨 쉬는 고운사와 노인복지회관 앞 독립운동기념비

의성에는 조용한 절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고운사(孤雲寺)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신라의 대문장가 최치원이 머문 역사적 장소이자, 조선시대 민중과 연결되는 공간이었습니다. 고운사는 고요한 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며, 대웅전과 사천왕문, 삼층석탑 등이 잘 보존돼 있어 전통 건축과 불교문화의 기본 틀을 가족과 함께 관찰할 수 있는 사찰입니다.

하지만 더 흥미로운 지점은 의성군 노인복지회관 앞에 세워진 독립운동 기념비입니다. 이곳은 의성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이끈 수많은 이름 없는 민초들의 이름을 새긴 장소로, 어떤 의미에서는 '작은 독립기념관' 이상의 상징성을 지닙니다.

부모님과 함께하면 “당신 할아버지 세대가 바로 이 시절을 살았지”라는 정서적 연대감을 나눌 수 있고, 아이에게는 “이 사람들이 없었으면 지금 우리는 없었을지도 몰라”라는 역사의 책임감을 일깨우는 장소가 됩니다.

특히 고운사에서 느끼는 정적인 자연과 불교 철학, 그리고 마을 앞 독립운동비에서 느끼는 열정과 헌신은 의성이라는 공간이 단지 ‘작은 군(郡)’이 아니라, 다채로운 정신적 지층을 지닌 역사 공간임을 몸으로 느끼게 해 줍니다.

의성은 자극적인 관광명소는 아닙니다. 하지만 고대의 기억(조문국), 유교의 정신(향교), 민초의 땀(독립운동비)을 품고 있어 세대가 함께 의미 있는 여행을 하기 위한 최적의 공간입니다. 흙길을 따라 걷고, 설명을 곁들이다 보면,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온도와 호흡이 있는 역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다음 가족 여행, 잠시 유명지를 벗어나 조용하지만 깊은 의성으로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 길 끝엔 세대가 함께한 이야기와 기억이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