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90년대, 일요일 점심의 풍경 속에는 늘 짜장면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사 오시던 따뜻한 비닐봉지 속엔 그 시절의 애틋함, 가족의 풍경, 그리고 삶의 무게가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이 글은 자장면을 통해 50대의 시간과 정서를 되짚는 감성 회상 여행입니다.
일요일 점심의 풍경 – 자장면은 집에 오는 외식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에게 짜장면은 그저 흔한 한 끼일지 모르겠습니다. 배달 앱 몇 번만 두드리면 십여 분 안에 따끈한 그릇이 문 앞에 도착하고, 유치원 어린이집 소풍 도시락에도 미니 자장면이 등장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어린 시절이었던 70~80년대에는 짜장면이 '외식의 꽃'이자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 보상 같은 음식'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짜장면이 반가웠던 날은 바로 일요일 점심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집엔 외식을 위한 경제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식당에 직접 가서 식사하는 일은 설날, 추석, 아니면 결혼식 같은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에나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일요일 아침, 아버지가 신문을 덮고 “오늘 점심은 짜장이나 먹자”라고 말씀하시면, 그날은 마치 명절처럼 들뜨는 하루가 되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동네 중국집에 전화를 거셨고, 그곳에서 비닐봉지에 담긴 은색 양은그릇 두 개를 들고 돌아오셨습니다. 비닐봉지는 따뜻했고, 안에서 수증기가 맺혔고, 아이였던 저희는 기다림 끝에 그 봉투를 받는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습니다.
자장면은 집에서 먹는 외식이었습니다. 배달이라는 단어도, 음식 포장이라는 시스템도 정교하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그 한 그릇엔 '밖의 맛', '도시의 풍경', '부모님의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습니다.
그 시절, 짜장면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의 냄새, 경제의 흐름, 가족의 정서가 담긴 한 그릇의 기록이었습니다.
비닐봉지에 담긴 온기 – 아버지의 침묵, 그리고 짜장면의 무게
아버지 세대는 말이 없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감정은 자장면이라는 음식 속에, 그리고 그 음식을 들고 돌아오는 발걸음 속에 분명히 담겨 있었습니다.
일요일이 되면, 아버지는 가장 먼저 신문을 정독하셨습니다. 그 사이 저희는 TV 만화를 보며 웃거나, 잔소리를 들으며 집안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정오쯤,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체크무늬 양복바지를 걸치시고, 동네 끝에 있는 중국집으로 향하셨습니다.
그 가게 이름도, 주인의 얼굴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아버지는 다섯 그릇의 짜장면을 주문하시고, 그걸 들고 말없이 돌아오셨습니다.
그 비닐봉지를 받는 순간, 어머니는 말없이 그릇을 덜어주셨고, 아이들은 입에 짜장을 묻히며 순식간에 면을 흡입했습니다. 그 모습 속에서 아버지는 미소도 없이, 그러나 천천히 젓가락을 드셨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 한 그릇을 위해 아버지가 얼마나 고민했는지, 한 주간 지친 몸과 마음을 이 작은 선물 하나로 표현하고 싶어 하셨다는 사실을.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짜장면은 그저 음식이 아니라, 아버지가 표현할 수 있었던 유일한 형태의 애정이었습니다. 입으로 말하는 대신, 손으로 들고 온 따뜻한 온기 한 봉지.
짜장면은 어쩌면 아버지가 사랑을 담아 전달한 편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그렇게, 말 대신 음식이 사랑을 전해주던 시절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흑백 기억 속의 자장면 – 그 시절, 가장 따뜻한 사치 한 그릇
그때의 자장면은 검었습니다. 지금처럼 짜지 않았고, 기름기가 번들거리지 않았으며, 감자와 양파가 굵게 썰려 있었고, 고기는 작았지만 존재감이 있었습니다. 양은그릇에 담긴 자장면은 마치 당시 한국 사회의 축소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당시는 뭐든 부족했습니다. 옷도 물려 입었고, 과자도 명절이 되어야 먹을 수 있었으며, TV는 흑백이었고, 전화기는 동네에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사람들은 ‘짜장면 한 그릇’에 진심을 담았습니다.
친구 생일잔치에서 짜장면이 나오면, 그 집은 부자 소리를 들었고, 중학교 입학 날, 엄마와 단둘이 먹은 짜장면은 어른이 되는 문턱에서 먹는 통과의례 같은 음식이었습니다.
이제는 다양한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가 되었고, 짜장면도 프랜차이즈화되어 표준화된 맛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세대에게 자장면은 여전히 특별식이며, 그때 그 맛을 떠올리면, 흑백텔레비전 화면처럼 먼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그 자장면을 함께 먹던 가족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한 그릇을 다 먹기도 전에 형은 나가 놀러 나갔고, 어머니는 설거지를 시작하셨고, 아버지는 라디오 앞에 앉아 조용히 신문을 다시 펼치셨습니다.
아무 말 없이 지나간 일상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모든 순간이 짜장면처럼 진하고 따뜻한 장면으로 한국적인 추억, 가장 특별했던 한 그릇이었습니다.
짜장면은 더 이상 특별한 음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50대가 된 지금, 그 시절 짜장면은 여전히 마음속에서 ‘가장 진한 특별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음식의 기억이 아니라, 시대의 감정이고, 가족의 분위기이며, 아버지의 손길입니다.
혹시 요즘 짜장면을 드셨나요? 다음에 다시 그 짜장면을 만나게 된다면, 그 위에 검은 소스보다 더 짙은 추억의 향기가 묻어날지도 모릅니다.
그 시절 아버지가 들고 오시던 따뜻한 비닐봉지. 그 속엔 온 가족의 일요일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기억이 다시 그리워지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