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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에서 만난 무명의 흔적들 – 유교, 불교, 민속이 머문 산골의 시간 경상남도 함양은 사람들에게 조용한 산골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고요한 땅은 조선 유학자들이 사유하며 글을 남긴 공간이자, 실학과 불교, 민속이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던 독특한 지식의 터전이었습니다. 남계서원으로 대표되는 선비 문화, 지리산 자락의 불교 명승지, 그리고 산 아래에 남겨진 평민들의 민속 신앙까지—이 글에서는 흔히 주목되지 않았던 함양의 인문 지형을 함께 걸어보며, 조용하지만 치열했던 사유의 흔적을 따라가 보시고자 합니다.남계서원에서 시작된 질문, 함양이 품은 유교의 깊이함양의 남계서원은 아주 조용한 서원입니다.. 조선 중기 유학자 정여창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이 서원은 1552년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기도 하며, 그 자체로 조선 유교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입니다. 그러나 .. 2025. 5. 10.
설악산, 전설을 넘은 기록의 산 (전쟁, 사찰, 침묵의 역사)(1) 많은 이들에게 설악산은 아름다운 풍경과 신화적 설화의 공간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 바위와 숲, 계곡 아래엔 총탄 자국과 승려의 침묵, 조선의 흔적이 조용히 흐른다. 이 글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설악산의 실질적 역사, 특히 전쟁의 흔적과 불교문화의 충돌과 공존을 중심으로 기록된 시간을 따라 걸어본다. 단순한 자연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의 산, 설악산을 다시 바라본다.신화 뒤의 진실, 설악산에 기록된 조선의 조각들설악산은 수많은 전설로 둘러싸여 있다. 장군봉에 얽힌 호랑이 이야기, 권금성의 금화 전설, 울산바위의 전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질적인 기록들은 이보다 훨씬 흥미롭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권금성이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전설 속 요새로만 알고 있지만, 실제 조선왕조실록에는 권금성에 대.. 2025. 5. 10.
군산은 저항의 도시 - 기억을 실은 철길 (항일운동, 경암동 철길, 구도심 역사) 군산은 겉으로는 조용한 항구 도시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땅을 걷다 보면 발끝에 닿는 레일, 오래된 창틀, 낡은 건물 안에는 소리 없는 저항의 역사가 흐르고 있다. 이 글에서는 경암동 철길을 중심으로, 군산 구도심에 숨겨진 항일운동과 민중 저항의 흔적들을 발굴한다. 단순한 근대건축 답사를 넘어, 살아 있는 기억의 지도를 펼치는 여행을 떠나보자.철길 위의 침묵, 경암동에 새겨진 시간군산 경암동 철길은 지금은 사진 명소로 유명하지만, 그 본질은 일제 수탈의 동맥이었다. 1944년 개통된 이 철길은 원래 군산항에서 옥구 평야로 이어지는 농산물과 자원을 수송하기 위한 물류라인이었다. 당시 일본 제국은 전쟁 물자 확보를 위해 전라북도 농산물을 대량 반출했고, 이 철길은 그 중심 경로였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맥락.. 2025. 5. 9.
전라도 끝자락에서 읽은 역사 - 칼과 붓, 파도를 품다 전라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풍경이 아름다운 남도의 땅이 아니다. 이곳은 조선의 지식인들이 머물며 붓을 들고 나라의 길을 고민했고, 외세에 맞서 들고일어난 칼날의 흔적이 바람 속에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특히 해안을 따라 펼쳐진 전라남도의 끝자락 지역에는, 조선 중 후기 유학과 의병의 역사가 겹쳐지며 고유한 문화적 풍경을 이룬다. 해남, 진도, 고흥 같은 땅끝 마을에서 우리는 역사서에 담기지 않은 인물과 사연을 만날 수 있다. 붓과 칼, 그리고 파도가 교차하는 이 공간은 사라지지 않는 기억의 책장처럼 여행자의 발길을 붙든다.붓을 든 유학자들, 땅끝에서 나라를 고민하다조선 후기, 중앙 권력에서 멀어진 전라도는 뜻을 품은 유학자들의 은둔처였다. 해남 윤선도 고택이 있는 녹우당은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 2025. 5. 8.
아산의 봄, 과거를 걷다 (봄꽃길, 역사기행, 도보코스) 봄은 새로운 시작의 계절이다. 그리고 그 시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지는 '역사'와 '자연'이 동시에 공존하는 곳이다. 아산은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봄 도보 여행지다. 단순한 유적 답사나 꽃구경을 넘어, 그 땅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직접 발로 밟으며 걷는 ‘체험형 역사기행’이 가능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외암민속마을, 온양온천, 곡교천 벚꽃길을 따라 아산의 과거를 생생히 느낄 수 있는 봄 도보 코스를 소개하고자 한다.봄꽃 따라 걷는 외암마을의 시간여행외암민속마을은 ‘살아있는 민속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여전히 실제 거주민이 거주하는 전통마을이며, 아산의 오랜 양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한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봄이 되면 이곳은 매화, 살구꽃, 산수유로 덮여 한 폭의 동양화 같은 .. 2025. 5. 7.
하동의 역사 속으로 (섬진강, 유학정신, 은둔문화) 하동은 섬진강의 풍경과 녹차 향기만을 담고 있는 고장이 아닙니다. 이 땅에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말보다 사유가 앞섰던 선비들의 흔적이 고요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번 여행은 속도를 늦추고, 하동이 품은 ‘생각하는 역사’를 직접 걷는 여정입니다. 지도 밖의 하동, 그리고 조용히 말을 거는 고택과 강물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과거와 마주하게 됩니다.섬진강, 시간을 감싸 안은 강의 철학섬진강은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물줄기가 아닙니다. 하동을 가로지르는 이 강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자연의 철학을 품고 있습니다. 특히 하동에서 바라본 섬진강은 어떤 설명도 필요 없는 ‘자연 사유의 공간’입니다. 고운 모래와 돌멩이, 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강은 선비들이 사색에 잠기던 철학의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2025. 5. 6.